영국의 금융사(史) 전문가인 에드워드 챈슬러(61)가 최근 세계 경제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최근 저서인 ‘금리의 역습(The Price of Time)’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제로금리 등 경기부양책이 자산 버블과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다”면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등의 통화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금리가 너무 낮으면 무분별한 투기 열풍이 불어 금융시장이 취약해지고, 좀비 기업이 창궐하면서 결국 건실한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는 주장이다.
챈슬러는 케임브리지대,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투자회사 라자드브러더스와 GMO에서 일한 금융인 출신이다. 정통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금융 투기의 역사’ 등 많은 저서가 화제가 되고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경제 칼럼을 쓰면서 ‘스타 저술가’로 인정받았다. 미 경제지 포천은 “생존한 최고의 금융사가 중 한 사람”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14일 그를 줌 화면을 통해 만났다.》
―새 책 ‘금리의 역습’에서 저금리의 부작용을 경고했다.
“역사적으로 금리가 지나치게 낮거나 갑자기 떨어졌을 때는 항상 투기성 버블이 있었다. 이자율이 낮으면 투자자들은 더 많은 위험을 짊어지면서 보상을 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어떤 사례가 있나.
“그 유명한 ‘튤립 버블’(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 과열 투기 현상)은 네덜란드의 통화 정책이 느슨했을 때 발생했다. 1700년대 ‘미시시피 버블’ 때도 이자율이 내리자 주가가 폭등했다. 현대에 와서는 미국, 일본 등의 금리가 낮을 때 신흥국이 싼값에 달러화나 엔화를 차입했다가 나중에 부채 규모가 늘어나 통화가치가 폭락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미시시피 버블’은 스코틀랜드 출신 존 로가 일으킨 투기 광풍을 말한다. 로는 프랑스에서 은행을 설립한 뒤 돈을 마구 찍어내 금리를 낮추고,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지역에 대한 독점거래권을 가진 ‘미시시피 회사’를 인수했다. 그러자 이 회사에 대한 투기가 시작돼 주가가 무려 20배 폭등했지만 이내 주식시장의 붕괴로 이어졌다.
―저금리의 폐해를 더 설명해 달라.
“금리는 자본이 어디로 배분되는지를 결정한다. 금리에 따라 사람들이 투자처를 정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낮은 금리는 자본의 올바른 배분을 어렵게 하고 나쁜 투자를 일으킨다. 그다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좀비 기업에 자금이 흘러가게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비효율이 생긴다. 새로운 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새로운 기업들이 줄어들게 된다. 이는 저성장, 저생산성의 원인이 된다. 금리는 저축에 대한 보상이다. 금리가 없다면 가치평가를 할 수 없고 자본을 배분하거나 투자할 수도 없다. 어느 체제이든, 특히 자본주의는 금리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고금리가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지 않나.
“물론 엄청난 고금리도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 만일 금리가 10%에 달한다면 건실한 기업들도 망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고금리의 폐해는 모두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저금리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려 한 것이다.” ―중앙은행들의 대응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나.
“지금까지 중앙은행들은 버블 붕괴나 금융위기를 금리 인하 및 돈 풀기로 서둘러 진정시키려고만 했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러시아 국채에 투자했다가 파산한 미 헤지펀드) 사태나 그 이후 닷컴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문제 해결을 자꾸 뒤로 미루면서 단기 대응에 급급하다 보니 그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지기만 했다. 어떤 이들은 양적완화(QE)를 ‘수익을 미래에서 당겨오고, 위험은 미래로 보내는 행위’라고 표현한다.” ―그래도 금융위기 같은 큰 위기가 오면 금리를 내리고 시장을 진정시키는 게 우선 아닌가.
“금리를 제로로 낮춘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서 그랬다지만 그들은 이 시스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에겐 아이슬란드라는 대안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아이슬란드는 부채 위기가 너무나 심각했지만 외국에서 달러화 지원을 받지도 않았고 은행을 억지로 구제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에 고통스러운 긴축을 받아들이고 저축을 늘렸다. 그런 기간을 보내고 난 뒤 아이슬란드는 위기를 극복하고 한때 금융에 과잉 의존하던 나라에서 기술과 관광산업으로 발전하는 나라로 변모했다. 또 부채는 줄었고 생산성은 늘었다. 문제는 정치적으로 그런 결단을 쉽게 할 수 있느냐다.” ―지금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원인은 무엇인가.
“2008년 금융위기 때 연준은 채권을 매입하면서 유동성 공급을 하려 했지만 이 돈은 시중에 풀리지 않고 금융 시스템 안에서 계속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최근 팬데믹으로 양적완화가 다시 시작됐을 때 그 돈은 과거와 달리 실업급여나 재난지원금으로 시중에 풀리며 소비가 실제로 늘었다. 물론 동시에 공급망이 붕괴되며 공급 쪽에 충격이 생긴 것도 인플레이션에 일조했다.”
―중앙은행들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빠르게 올리고 있는데 잘하고 있는 건가.
“중앙은행은 지금 선택의 여지가 없고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쉽게 말해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중앙은행은 너무 많은 돈을 뿌려 왔고 인플레이션이 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래도 어찌 됐든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긴 했다. 하지만 장기간의 저금리는 경제에 엄청난 취약성을 키웠다. 이럴 때 긴축을 하면 주식시장, 채권시장이 위험해지고 기업들도 위기가 찾아온다. 자본이 잘못 배분되면 이들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작년에 이미 그런 현상을 우린 경험했다.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이 조금 둔화하면서 연착륙에 대한 기대도 커지긴 했지만, 금융 시스템과 경제가 초저금리에 너무 익숙해져서 정상 수준의 금리를 받아들이기엔 힘이 들 것이다. 영어에 ‘weaning’(아이가 엄마 젖을 떼는 것)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는 저금리 시기에서 젖을 떼야 한다.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충격은) 이제 초기 단계일 뿐이다.”
―당신이 중앙은행장이라면 뭘 할 것인가.
“(한숨) 정말 어렵다. 이게 나한테 닥친 일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다. 그래도 금융시장 리스크가 있으니 지금은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를 택하겠다. 인플레이션을 당장 꺾으려 하다 보면 금융 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다. 고물가를 당분간은 받아들이는 쪽으로 (통화정책을) 해야 하지 않을까. 만일 금리를 올린다면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주택담보대출자를 위해 세제 혜택을 주는 식으로 ‘쿠션’을 줘야 한다.”
―금리 인상이 계속된다면 좀비 기업들의 파산이 이어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좋은 일이다. 그들이 점유하고 있는 노동력, 자본, 토지를 (더 생산적인 쪽으로) 재배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좀비 기업은 혁신을 억누르고 있다. 기업들의 파산은 물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창조적 파괴를 하는 것은 우리 시스템의 본질이다.” ―금리가 오르면서 정부 부채는 어떤 영향을 받나.
“저금리와 양적완화 시기에 정부는 싼 금리에 돈을 조달할 수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 부채가 상당히 늘어 미국 유럽, 영국 등에서는 국가부채 비율이 국내총생산(GDP)의 100% 이상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지금 금리가 오르면서 정부 재정도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언제 사라지나.
“인플레이션은 적어도 향후 10년간은 계속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물가가 올랐다가 다시 잠잠해지고, 그래서 또 돈을 풀면 다시 물가가 뛰는 현상이 마치 1970년대처럼 반복될 것이다. 지금의 에너지 위기는 화석연료 전환기가 겹쳐서 그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같은 상황이 다시 올 것이라고 보나.
“그건 아니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미 부동산 버블과 규제되지 않은 파생상품 등에서 비롯됐다. 각각의 위기는 저마다 성격이 다르다고 본다. 그보다는 인플레이션으로 사람들이 궁핍해지는 것, 중국 경제의 고성장이 끝나가는 것이 우려된다.”
―어쩌다 경제사에 관심을 가졌나.
“내 타고난 성향이다. 금융의 역사를 잘 알면 현재 벌어지는 일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좋은 투자자는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
―저자로서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인플레이션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쓸 것이다. 매우 복잡하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물가 현상을 잘 이해하도록 도울 것이다.”
에드워드 챈슬러
△ 1962년 영국 출생 △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 졸업 △ 옥스퍼드대 석사(근대사 전공) △ 투자기업 라자드브러더스, GMO 근무 △ 1999년 ‘금융 투기의 역사(Devil Take the Hindmost)’ 발간 △ 2005년 ‘신용 크런치 타임(Crunch Time for Credit?)’ 발간 △ 2008년 미국 언론상 ‘조지 포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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