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때문에 지하철 역사 내부 엘리베이터 설치 등 시설 개선 사업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20일 대구시 교통담당 공무원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요구는 거세지는데 천문학적 적자 때문에 시설 개선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 역사 1곳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면 20억∼25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 공무원은 “서울처럼 장애인 시위가 일어나지 않을까 매일 노심초사”라며 “시민 안전과 교통약자의 권리를 보장하려면 무임승차 연령 상향 등 적자를 메우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 등 6개 광역자치단체에선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상향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광역지자체 상당수는 “누적 적자가 24조 원에 이른 상황에서 무임승차 연령 재조정이 없으면 대중교통 안전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노인들은 “노인 빈곤율이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인데 교통 지원이 끊기면 노인 이동권 제약이 상당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 무임승차 연령 상향 총대 멘 대구시
노인 무임승차 연령 상향에 가장 적극적인 광역지자체는 대구시다.
대구시는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현 65세에서 70세로 조정하기로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하철 무상 이용 연령을 65세로 정한 것은 예전 일이고 그동안 생물학적 나이가 적어도 20년 이상 젊어진 지금 노인 기준 연령도 높여 잡아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는 지하철 요금 인상 시기를 하반기(7∼12월)로 연기했지만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70세 상향에 대해선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구처럼 지자체가 무임승차 연령을 높일 경우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오세훈 서울시장은 기획재정부의 적자분 보전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달 31일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시민의 교통비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이제라도 기재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대전시도 70세 이상 버스 무임승차 제도 시행을 준비하면서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70세 상향을 검토 중이다. 인천시도 다른 광역지자체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관련 정책을 검토 중이다.
지자체들이 고령층의 반발에도 ‘70세 이상 무료승차’ 카드를 검토하는 건 적자 규모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전국 지하철 운영 지자체협의회에 따르면 도시철도 관련 누적 적자는 전국적으로 24조 원(2021년 기준)에 달한다. 이용 인원이 가장 많은 서울은 2020년 당기순손실이 1조 원을 넘었다.
특히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액이 상당하다. 국토교통부 서울시 대구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하철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액은 5367억 원가량이다. 지난해의 경우 무임승차 손실이 서울은 3152억 원, 부산은 1234억 원, 대구는 512억 원에 달한다. 특히 대구는 전체 이용객의 30.7%가 무료로 이용하는 실정이다. 대구교통공사 관계자는 “밑 빠진 독에 세금을 계속 넣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 30년 이상 유지된 노인 연령 65세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당시 65세로 규정한 노인 나이가 고령화라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981년 당시 65세였던 평균 연령은 지난해 기준 84세로 20세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3.9%에서 16.6%로 뛰었다.
고령층에서도 65세를 노인으로 보지 않는 시각이 확대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응답자의 52.7%는 노인 기준연령으로 ‘만 70∼74세’가 적당하다고 꼽았다. 서울시가 65세 이상 남녀 301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스스로 생각하는 노인 기준연령은 평균 72.6세로 조사됐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복지제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라도 노인 기준연령 상향과 노인 기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며 “다만 정년 연장 등 고령층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도 함께 종합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65세 이상 무임승차’가 집권 정당성이 약했던 전두환 정권이 민심을 얻기 위해 정한 근시안적 기준이란 지적도 있다. 도면회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1984년 노인복지법 개정을 통한 65세 이상 노인 무임승차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완전 개통과 함께 일종의 홍보성 이벤트 성격이 강한 제도였다”며 “30년 넘게 유지하며 절대적 기준으로 삼기에는 정당성이 약하다”고 말했다.
● “노인 이동권 제약할 것” 우려도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노인빈곤율이 높은 상황에서 무임승차 기준 연령을 높이면 노인 이동권이 크게 제약받을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21년 3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3.5%(2019년 기준)의 3배에 육박한다.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은 “노인들은 낮 시간대에 지하철을 주로 타기 때문에 적자와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며 “무임승차 기준연령을 높이면 교통비 부담 때문에 집에만 있어야 할 노인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 일자리가 상당수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실버 지하철 택배기사 김모 씨(66)는 “하루 꼬박 일해서 4만 원 정도 버는데 무임승차를 못 하면 수입이 반토막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지하철 무임승차를 단순히 재정적 측면에서만 판단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정복 대한노인회 사무부총장은 “노인들이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닐수록 국가 입장에선 건강보험비 지출이 줄고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도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도시철도의 지속가능성과 노인 이동권을 동시에 고려할 경우 ‘전부 또는 전무(All or Nothing)’식 해법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단계적 또는 점진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참고할 수 있는 건 ‘대구식 모델’이다. 대구의 경우 도시철도 무임승차 연령을 높이는 대신 버스요금 무료화를 도입하고, 둘 다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먼저 현재 무료 혜택이 없는 시내버스는 7월부터 75세 이상 노인에게 무료 탑승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매년 연령을 낮춰 5년 후인 2028년에는 70세 이상에게 모두 무임승차 혜택을 주기로 했다. 그 대신 지하철은 65세 이상인 무임승차 연령을 70세 이상으로 높이되 반대로 5년 동안 매년 연령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일부 선진국처럼 부분 할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네덜란드는 65세 이상에게 철도 40∼45% 할인, 버스 50% 할인을 적용하고 있다. 덴마크는 철도와 버스를 50% 할인해주는 대신 이용 시간을 제한한다. 프랑스는 일정 소득 이하의 고령층에게 20∼80%의 차등 할인을 적용한다. 이진학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처럼 특정 연령 이상의 노인에게 대중교통을 전액 지원해 주는 국가는 거의 없다”며 “초고령사회 선배인 일본도 70세 이상 노인 중 신청자에 한해 모든 대중교통 할인 혜택을 준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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