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질투[2030세상/박찬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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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나는 업계 선배 A가 늘 부러웠다. 선배는 몇 년 전 좋은 상을 받아 소설가로 등단했다. 요즘은 집필을 하는 틈틈이 요가 수련을 간다. 선배의 집 창밖에서는 시내의 고요한 녹지가 내려다보인다. 선배는 내가 못 한 결혼도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원고 마감을 하다 보면 종종 정신이 지쳐 하염없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본다. 스마트폰 화면 속 새로고침된 계정의 선배는 미술관에 가고, 좋은 와인을 마시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늦게까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지쳐 있을수록 그 모든 게 부러웠다.

“나는 네가 부러운데?” 몇 주 전, 오랜만에 안부를 나누다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보통 SNS에 올리는 건 대부분 자신을 홍보하는 희소식이다(플랫폼 성격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그 주제는 여기서 논하긴 너무 길다). 자신에게도 SNS에 올리지 못할 여러 고충이 있다고 선배는 1:1 채팅에서 말했다. 선배는 선배대로 나의 자기 홍보성 SNS 게시물을 보면서 나를 부러워했다는 것이었다.

나와 그 선배가 서로 잘났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님을 독자 여러분께서는 아실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안부를 나누지 않은 채 서로의 자기 홍보성 소식에만 노출되니 이런 일이 생겼다. 이를 요약하는 말도 떠올렸다. 지속 가능한 질투. 질투를 계속하려면 질투의 양분이 될 남 소식이 있어야 한다. SNS에는 그런 소식이 가득하다. 그러니 웬만한 수준의 정신 수양이 된 사람이 아니라면 계속 질투가 자라난다. 내가 A 선배를 부러워했던 것처럼.

그 질투의 양분은 사실 현실도 아니다. SNS 세계에서는 허상이 현실을 압도한다. 장년층께서는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 사진을 얼마나 잘 고치는지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작은 모바일 화면 안에서도 얼굴을 고치고 몸매를 고치고 사진의 일부를 잘라내고 일부를 흐릿하게 만들어 편집한 이미지를 올린다. 사람들은 그 편집된 이미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질투하거나 부러워하거나 동경하거나 깎아내린다.

지속 가능한 질투 시스템은 생각할수록 오묘하다. 사람들은 가상의 이미지와 과장 섞인 자기 홍보 문구를 보며 질투나 감정 등의 실질적인 감정을 느낀다. 어느 세상에서나 그렇겠지만 지금은 자극이 너무 많다. 2022년 8월 집계 자료 기준으로 한국의 인스타그램 월간활성이용자 수(MAU)는 1891만 명을 넘겼다. 스마트폰 앱만 켜면 각종 OOTD(outfit of the day·오늘의 옷차림) 사진과 ‘숏츠(1분 미만의 짧은 동영상)’ 같은 예쁜 이미지들이 쉴 새 없이 출렁인다. 멋진 몸, 슈퍼카, 풀빌라, 비싼 밥, 해외여행…. 그 모든 게 우리 모두의 질투심을 증폭시킨다.

그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세계적인 창작자나 기업가들은 SNS 계정을 없애고 자기 시간을 보낸다고도 한다. 그것도 성공한 사람들 사정이고 나는 내 활동들을 알려야 한다. 내 활동을 알리려 SNS 앱을 켜 내 계정에 게시물을 올렸다가 구덩이에 빠지듯 남들의 편집된 행복을 들여다보고, 또 A 선배 같은 사람을 부러워한다. 몇 년 전 나온 노래 가사대로다. ‘그렇게 시간 낭비를 하네/저 인스타그램 속에서.’

#지속 가능한 질투#sns#숏츠#자기 홍보성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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