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트럼프 복귀 기다리나 [오늘과 내일/이철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2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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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분열 노린 ‘승산 없는 우크라戰’ 지속
韓 무기지원 ‘진영 테스트’ 압박 거세질 것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흔히 전쟁은 시작하기는 쉬우나 끝내기는 어렵다고들 하지만, 대부분의 전쟁은 5개월 정도면 끝난다고 한다. ‘전쟁 종결’ 이론가인 하인 호먼스 미국 로체스터대 교수는 전쟁의 50%가 5개월 안팎을 끌다가 비교적 신속하게 끝났다고 분석했다. 전쟁이 시작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의 힘과 의지를 파악하는 진실의 순간이 오고, 그런 현실과 전망 아래 서로 양립 가능한 조건을 맞춰 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전쟁은 꽤 장기화되는데, 그건 다른 차원의 역학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호먼스 교수는 말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경우다. 1914년 개전 4개월 만에 독일 황제와 내각, 총참모부는 승산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프랑스를 빠르게 제압한 뒤 러시아로 진군한다는 단기결전의 슐리펜 계획은 일찌감치 실패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독일은 전쟁을 계속하기로 했고 이후 참혹한 지구전이 4년이나 이어졌다. 그 이유는 뭘까. 실패를 인정하면 곧 국내 혁명을 불러 체제가 전복될 것이라는 권력 지도부의 공포심 때문이었다.

이런 딜레마는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맞는 러시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러시아가 며칠 안에, 적어도 몇 주 안에 끝낼 것이라던 전쟁은 앞으로도 최소 1, 2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21일 국정연설에서 전쟁의 모든 책임을 서방으로 돌리며 서둘러 끝낼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전쟁이 이렇게 길어진 것은 러시아군, 아니 푸틴의 오판과 실책이 낳은 결과다. 전쟁 초기 러시아는 충분한 공습과 안정적 병참선도 없이 여러 전선에 걸쳐 지상군을 조급하게 진격시켰고 우크라이나의 항전에 막히면서 예봉이 꺾였다. 군사작전까지 일일이 챙기는 푸틴의 어처구니없는 개입이 아니고선 설명이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푸틴은 뒤늦게 방어 체제로 전환하고 부분 동원령도 내렸지만 이미 전쟁은 끝도 없이 병력과 장비, 탄약을 쏟아붓는 소모적 장기전이 됐다. 어느덧 푸틴의 사활이 걸린 전쟁이 됐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의 퇴각, 특히 크림반도의 포기는 정권의 존립, 나아가 푸틴의 생명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푸틴의 국내 권력 기반은 탄탄하다. 푸틴은 전쟁을 지속할 동원 능력도 충분하다고 자신한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언제나 끝날까.

일방의 결정적 승리가 없다면 전쟁은 서방이든 러시아든 어느 한쪽이 탈진할 때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푸틴은 핵전쟁 협박으로 미국과 유럽의 직접 개입을 막으면서 서방의 분열을 노리고 있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변수 중 하나는 내년 말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는 상황이다. 벌써 트럼프는 “내가 대통령이면 24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미국에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이 과도하다는 여론도 늘고 있다.

푸틴의 전쟁은 전 세계의 진영 대결, 나아가 한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고 있다. 특히 러시아도, 서방도 무기와 탄약 창고가 비어가는 상황에서 한반도는 재래식 화력의 공급처로 주목받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 용병회사에 무기를 공급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한국도 우크라이나 지원 국가의 빈 무기고를 채우는 식의 간접 지원을 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어느 편인지 분명히 하라는 ‘진영 테스트’ 압박은 한층 강해질 것이다. 이미 서방은 한국에 직접적 무기 지원을 요청하고, 러시아는 “한-러 관계 파탄”을 경고하고 있다. 응당 민주진영 연대에 적극 나서야겠지만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을 생각하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리스크를 관리하며 국제적 책임을 다하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침공 1년#서방 분열#진영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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