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의 ‘경제고통지수’가 8.8을 기록했다. 1월 기준으로 통계방식이 바뀐 1999년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해 산출하는 경제고통지수는 수치가 높을수록 국민들의 삶이 팍팍하다는 것을 뜻한다. 대학 졸업생이 취업시장에 본격 진입하고, 건설공사가 줄어드는 1월에는 실업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올해는 고물가까지 겹쳐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적 고통이 더 커졌다.
지난달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2%로, 5% 이상 고물가가 9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1월 실업률은 1년 전보다 조금 내렸지만 그사이 급등한 물가 탓에 경제고통지수는 1년 전보다 높아졌다. 정상적인 경제 상황에서는 호황일 때 물가가 올라도 실업률이 낮아지고, 불황이 오면 실업률이 높아지는 대신 물가가 하락하는 등 물가와 실업률이 반대로 움직인다. 따라서 둘을 더한 경제고통지수가 급격히 오르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 미중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이라는 이례적 대외변수가 중첩된 탓에 지금 한국 경제는 고물가와 고용불안을 동시에 겪고 있다.
특히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인한 공공요금 상승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고통의 겨울을 나고 있다. 일반 가계, 자영업자 가릴 것 없이 갑절로 치솟은 전기·가스요금에 한숨을 내쉰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목욕, 숙박업종에선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실업자 수도 1년 만에 다시 100만 명을 넘어섰다. 60세 미만 제조업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2만6000명이나 줄었다.
동시에 진행되는 고물가와 일자리 불안은 ‘스태그플레이션’의 불길한 신호다. 지난달 한국 소비자들이 향후 물가 추이를 예상한 ‘기대 인플레이션’은 석 달 만에 다시 4%대로 올라섰다. 대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고, 건설경기까지 얼어붙어 고용도 금세 나아지길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상반기 중 공공요금을 동결하기로 했지만, 관련 공기업 적자가 폭증하는 전기·가스요금은 올봄에 추가로 인상될 전망이다. 한계선을 이미 넘어선 서민들로선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 닥칠 수 있다.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영세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데 가능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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