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취업준비생들에게 ‘인공지능(AI)전형’ 대비는 필수다. 통상 서류전형에 이어 AI역량검사와 AI면접이 진행되는데, 사실상 1차 면접과 다름없다. 모니터를 보고 짧게 자기소개를 한 뒤 인·적성검사 같은 객관식 문답을 거쳐 분석력, 집중력, 순발력 등을 테스트하는 각종 게임을 해내야 한다. 뒤이은 심층대화에서는 표정·음성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지원자의 신뢰도, 자신감, 친화력 등을 평가한다. 국내 대기업, 금융사, 공공기관 800여 곳이 이런 전형을 도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취준생들 사이에선 ‘깜깜이 전형’이라는 불만이 높다. AI면접과 역량검사가 어떻게 이뤄지고, 어떤 기준으로 당락을 결정하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가 AI면접을 도입한 공기업을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냈더니, AI업체에 전형을 맡긴 탓에 해당 기업도 관련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AI가 뭔데 나를 떨어뜨리냐”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카메라와 시선을 맞춰 연습하라’, ‘조명을 밝게 하라’ 같은 온갖 팁이 쏟아진다.
▷채용부터 평가, 승진까지 기업 인사(人事)에 이미 AI가 깊숙이 개입했지만 공정성과 평가 기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마존은 일찌감치 AI 채용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가 여성보다 남성 지원자를 선호하는 오류를 발견하고 폐기한 적 있다. AI가 과거 채용 데이터에서 성차별 편견까지 학습한 결과였다. 이제 미국에서는 인사 발령의 최후로 꼽히는 해고 단계에서도 AI가 직원을 골라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구글이 직원 1만2000명을 내보냈는데, 전직 직원들 사이에서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AI 알고리즘이 해고자를 가려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물론 구글은 AI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하다. 채용, 승진 과정에서 AI가 우수 직원과 고성과자를 골라내는 현재의 시스템을 역이용하면 해고 명단을 만드는 게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 기업의 인사담당자 98%는 올해 감원 직원을 정할 때 알고리즘을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 은행들이 영업점 직원 수천 명의 지점 배치와 인사에 AI 알고리즘을 도입했는데, 말 많고 탈 많던 학연·지연 논란이 사라져 직원들 만족도가 높아졌다. 이처럼 AI가 결정한 해고 커트라인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혼 없는 AI가 사람 일자리까지 박탈할 수 있다는 전망이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 많다. 편향된 데이터로 학습한 AI가 그릇된 해고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 AI 인사의 공정성 시비를 없애고 제대로 인재를 가려내는 것도 결국 AI를 쓰는 인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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