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안을까 업을까?[이상곤의 실록한의학]〈132〉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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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국민 화가’ 박수근의 그림 중 ‘아기 업은 소녀’라는 작품이 있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 아기를 업고 서 있는 소녀의 뒷모습은 그의 여느 작품처럼 한국적 정서와 서민의 애환을 가득 담고 있다. 하지만 이제 아기를 등에 업은 젊은 엄마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거나 가슴 앞으로 안고 다니는 게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왜 아기를 가슴에 안지 않고 업고 다닌 것일까. 여기에는 음양의 조화라는 한의학적 사유가 깔려 있다. 한의학에서 등은 양기(陽氣)가, 배는 음기(陰氣)가 흐른다고 본다. 그래서 아기를 업으면 그 자체로 음양의 조화가 맞춰지는 것. 배는 본래 차가운 곳으로 여름에도 이불을 덮어야 하는 곳이다. 엄마 등의 뜨거운 열은 아기의 차가운 배를 따뜻하게 데운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체했을 때 배가 아니라 등을 두드리는 것도 등의 양기와 관련이 깊다. 한의학의 고전 난경에는 “등에는 양기가 흐르는데 이 부위에 있는 수혈을 자극하면 양기를 내부로 옮겨 발산한다”는 내용이 있다. 즉, 등을 두드리면 등의 수혈이 자극되면서 위로 양기가 흘러가고 양기를 받은 위장은 멈춰 있던 운동을 재개한다는 것.

실제 사람의 등에는 양기의 상징인 독맥(督脈)이 흐른다. 독맥은 온몸의 양경(陽經)을 통솔한다. 인체가 소우주라는 전제 아래 독맥은 태양이 움직이는 궤도다. 동양의 천문도에는 태양의 길인 황도가 있고 그 지나가는 길에는 28개의 항성이 존재한다. 독맥에도 항성처럼 28개의 혈(穴)자리가 존재한다. 복부에는 음기의 상징인 임맥(任脈)이 있고 24개의 혈자리가 지상에서 24절기와 같이 흐른다.

월북 한의학의 대가인 조헌영 선생(조지훈의 아버지)은 자신이 쓴 ‘통속한의학’에서 독맥과 임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상사에게 추궁을 당하는 사람은 복부의 음맥인 임맥이 작용하여 가슴이 오그라들고 머리가 숙여진다. 반면 의기양양해지면 어깨를 펴고 가슴을 연다. 양맥인 독맥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르신들이 약수터에서 나무에 등을 계속 부딪치는 것도 몸속의 양기를 깨우기 위한 방법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조선 16대 왕 인조 때는 상벌을 제대로 하지 않고 신하들의 눈치만 보는 임금을 사간원이 나서 ‘독맥이 병든 사람’에 비유하는 상소를 올리는 일도 있었다.

아이를 가슴으로 안으면 부모의 심장 소리를 듣고 크면서 정서적 안정감이 생긴다는 얘기가 있다. 또한 아이와 눈을 맞출 수 있어 감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등으로 업어 키우면 부모의 허리도 보호하고 아기의 배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부모의 몫이지만 중요한 점은 등 건강이 온몸의 건강과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동의보감은 등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건강하게 살려면 가슴을 펴고 살 것”을 주문한다. “등은 가슴 속의 상태가 나타나는 곳이다 그러므로 등이 구부러지고 어깨가 굽어들면 장차 가슴 속 심장과 폐가 상한다.”

#아이#안을까#업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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