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검찰의 자신감과 확신이 곳곳에 묻어난다. 20쪽가량 되는 구속 필요 사유에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하다”는 대목을 포함해 ‘명백하다’는 표현만 7차례 등장한다. “다툼의 여지가 없다”, “자명하다” 등 비슷한 표현을 합치면 그 횟수는 훨씬 늘어난다.
하지만 왜 명백한지 근거는 충분히 나오지 않는다. 만약 사회부 기자가 이렇게 기사를 써 왔다면 “명백하다는 표현을 빼고 대신 명백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나열하기만 하면 판단은 독자가 할 것”이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충분한 물적 인적 증거가 있으며 하나씩 재판에서 보여주겠다”는 입장이다. 역량을 총동원해 수사한 만큼 아무 근거 없이 자신감을 보이진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대목은 있다. 검찰은 청구서에서 “녹음파일, 지시·보고문건, 이메일 등 객관적 증거와 관계인들의 일관되고 일치된 진술”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언급한 녹음파일,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에 의존했던 검찰이 어떤 결과를 받아들었는지 ‘곽상도 재판’을 지켜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곽상도 전 의원의 ‘50억 클럽’ 재판 기록을 보면 재판부가 “증거능력이 부여될 것인지 미정”이라며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또 녹취록의 특정 표현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신문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해 검사가 ‘당황스럽다’고도 했다.
결국 녹취록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전문진술’(제3자에게서 전해 들은 내용을 진술한 것)로 판단돼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재판 기록을 보면 검찰의 주장이 전문진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초기부터 재판부와 피고 측 변호인으로부터 여러 차례 나왔지만 검찰이 이를 대신할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반면 발언 당사자로 지목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는 녹취록 내용을 부인하거나 ‘허언’이라며 검찰 주장의 토대를 무너뜨렸다.
재판 과정에선 곽 전 의원 아들이 함께 뇌물을 받은 ‘공범’인지 제3자 뇌물죄에 해당하는 ‘제3자’인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법적으로 직접 금품을 받은 행위와 제3자에게 주게 한 행위는 구분되는데 검사는 직접 받은 뇌물로 공소를 제기했다”며 “이 경우 받은 사람의 생활비를 부담하고 있거나 당사자의 지출 경감 등 사유가 있어야 직접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친분이 있는 한 판사는 “여러 차례 재판부가 시그널을 줬을 텐데 검찰이 왜 공소장 변경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법조계에선 “검찰 측이 제3자 뇌물죄 입증 요건인 ‘부정한 청탁’과 ‘대가성’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대장동 사건을 뒷받침하는 토대가 ‘정영학 녹취록’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 및 남욱 변호사의 진술이란 것이다. 향후 진행될 이 대표 재판에서도 녹취록과 유동규 남욱 진술에만 의존하면서 핵심 피의자 김만배 씨의 입을 열지 못하면 비슷한 양상이 반복될 수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해 12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수사를 두고 “오로지 증거가 가리키는 곳만을 찾아가서 진실만을 밝혀내는 방식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검찰이 똑같이 ‘증거가 가리키는 곳’만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했는지 앞으로 이어질 재판에서 가려질 것이다. 그리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국회에 나가 할 체포동의요청 이유 설명에서도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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