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지난해 33조 원에 육박하는 영업적자를 냈다. 증권가에서 예상한 적자 규모를 1조 원 이상 웃도는 데다 재작년 적자를 5.6배 뛰어넘는 사상 최악의 실적이다. 분기별로는 작년 4분기 처음으로 적자 10조 원을 넘어섰다. 정부가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19.3원 인상했지만 적자 규모는 오히려 불어난 것이다.
이는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등의 연료비가 치솟은 가운데 지난 정부에서 전기료 인상을 억제했던 영향이 크다. 지난해 한전이 발전 자회사에 지급한 연료비와 전력 구입비는 1년 전보다 2배 가까이 급증했지만 가정과 공장 등에 전기를 팔아 올린 수입은 1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기 판매단가가 구매 원가보다 한참 낮아 한전이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역마진 구조가 심화됐다.
한전은 올해도 대규모 적자를 낼 가능성이 크다. 전기요금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올해 적자가 20조 원에 육박해 한전이 자본 잠식에 빠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가 전력망을 책임진 한전의 파산을 막으려면 원가 상승에 맞춰 전기료를 현실화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 전기료를 인상해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무역수지 개선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그런데도 1분기 전기료를 13.1원 올린 정부는 물가 부담을 우려해 향후 인상 폭과 속도를 조절할 것을 시사했다. 요금 현실화가 지연될수록 우량 공기업의 부실과 전력시장 왜곡을 더 키울 뿐이다. 지난해 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량 발행된 한전채가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며 발생한 자금시장 경색이 재연될 수도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가 지속되면 부당한 요금 체계에 대한 주주들의 소송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계와 기업 부담이 있더라도 정부는 전기료 현실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국민에게 설득하는 정공법으로 나서야 한다. 전기료와 더불어 인상이 억제돼 온 가스요금 등을 점진적으로 현실화하는 종합적인 에너지 대책도 필요하다. 그러면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요금 할인이나 바우처 지급 확대 같은 핀셋 지원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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