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3남 1녀를 뒀다. 1977년 권좌에 올랐을 때 장남과 차남은 이미 가정을 꾸렸고 삼남도 25세였다. 유일한 미성년 자녀는 43세에 얻은 에이미(당시 10세). 세계 최고 권력자의 고명딸이 어떤 학교를 다닐지 모두가 주시했다. 그의 선택은 ‘태더스스티븐스스쿨’이란 공립학교였다. 그는 취임 전부터 “엘리트 자녀가 대다수인 사립학교의 폐쇄성이 ‘공립학교는 열등하고 위험하다’는 인식을 강화시킨다”고 비판했다.
백악관이 위치한 수도 워싱턴은 ‘초콜릿 시티’로 불릴 만큼 흑인 인구 비율이 높다. 1970년대는 70%에 달했고 지금도 약 절반이 거주한다. 대학 진학률, 학업 성취도 지표 등도 미 평균을 밑돈다. 거의 모든 백악관 주인도 자녀를 고급 사립학교에 보냈다.
AP통신에 따르면 카터는 190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75년 만에 공교육에 자녀를 맡긴 현직 대통령이었다. 이 선택은 땅콩 농장주 출신으로 ‘보통 사람’을 외치며 집권한 그가 자녀 문제에서도 ‘내로남불’을 시전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표였다. 워터게이트 도청으로 정치에 환멸을 느끼던 미국인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대통령이 되겠다”던 공약을 지킨 것이다.
반대 지점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있다. 집권 전 공교육 개혁을 외쳤지만 취임하자 두 딸을 연 학비가 약 5만 달러(약 6500만 원)인 명문 사립 ‘시드웰프렌즈’에 보냈다. ‘당신의 딸들도 공립학교에 다녀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자 “노(No)”라고 했다. “대통령 이전에 아버지라서 어쩔 수 없다”고 했으면 솔직하다는 말이라도 들었겠지만 “워싱턴 교육당국이 애쓰지만 부족하다”는 군색한 변명만 내놨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두 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외동딸도 이 학교를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첫 6개월간 부인 멜라니아 여사 없이 지냈다. 멜라니아 여사는 뉴욕의 명문 사립 ‘컬럼비아그래머스쿨’을 다니는 아들 배런을 돌본다며 백악관에 오지 않았다. 이 학교의 학비 또한 약 6만 달러(약 7800만 원). 즉 자녀 교육에 관해서는 당적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대통령이 비슷한 선택을 했다.
공교육 중시 약속을 지켰지만 카터는 집권 중 무능한 정치인의 표본으로 불렸다. 이란 혁명세력이 수도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에 52명의 미국인을 444일간 억류한 ‘인질 사태’로 최강대국의 자존심이 박살났다. 오일쇼크 등에 따른 고물가와 저성장도 만연했다. 대내외가 다 말썽인데 도덕, 인권만 중시한다는 비판만 가득했다. 결국 ‘강한 미국’을 내세운 로널드 레이건에게 밀렸다.
자연인으로 돌아간 카터는 다른 전직 대통령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세계 각국을 돌며 민주주의, 인권, 기아 퇴치 등을 외쳤다. ‘다이소’와 유사한 ‘달러제너럴’에서 물건을 사고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쳤다. 취미인 목공 기술을 활용한 ‘해비타트’ 집짓기 봉사 또한 홍보 용도로 쓰지 않았다. 2017년 7월에는 93세 고령임에도 캐나다로 건너가 불볕더위 속에서 집을 짓다 탈수로 쓰러졌다.
가뭄으로 땅콩 농장이 파산했지만 고액 강연, 기업 이사회 활동 또한 마다했다. 대통령직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고 했다. 오바마 부부와 클린턴 부부가 강연과 저술 등으로 각각 최소 1억3500만 달러(약 1755억 원), 1억2000만 달러(약 1560억 원)를 모은 것과 대조적이다.
죽음마저 남다르게 준비하고 있다. 백수(白壽·99세)의 암환자인 그는 지난달 18일 “연명치료 중단”을 선언했다. 현직 때의 공과 논란에 관계없이 전직 대통령의 모범 사례를 보여줬다는 것만으로 그가 세계 정계에 남긴 유산은 차고 넘친다. ‘위대한 전직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평안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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