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선미]혁신 스타트업 성장 막는 기득권 카르텔이라는 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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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산업1부 차장
김선미 산업1부 차장
지난달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연세대 학위수여식에 ‘순서지에 없던’ 특별 연사로 깜짝 나섰다. 이 대학 도서관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는 윤 대통령은 약 7분간의 축사에서 ‘혁신’을 12번, ‘미래’를 9번 언급했다. “혁신에는 반드시 기득권의 저항이 따르게 돼 있습니다. 기득권 카르텔의 부당한 지대 추구가 방치된다면 어떻게 혁신을 기대하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같은 날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정기총회에서는 김영훈 신임 회장이 취임사를 했다. “법률시장은 원래부터 ‘선비’라고 규정되는 변호사의 독점 시장입니다. 이윤이 목표인 ‘상인’이 무도하게 뛰어들었을 뿐 아니라 마치 주인인 양 자신에게 반대하는 변협을 적으로 삼아 공격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청년들에게 ‘미래’와 ‘혁신’을 강조할 때 김 회장은 ‘선비’와 ‘상인’을 운운했다. 대한민국 엘리트 집단의 수장에게서 법철학과 문학이 흐르는 취임사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사설 플랫폼 타도’가 절반을 채운 취임 일성은 실망이었다.

삼대(三代)가 법조인 가족이라는 김 회장이 빗댄 ‘상인’은 ‘로톡’이다. 스타트업 로앤컴퍼니가 2014년 시작한 로톡은 공정에 민감하지만 아는 변호사가 없어 법이 막막한 MZ세대와 청년 변호사를 겨냥한 온라인 법률 플랫폼이다. 분야별로 변호사 정보가 공개되고 의뢰인들의 후기가 달려 ‘그들만의 리그’였던 법률시장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그러자 변협은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며 소속 변호사들의 로톡 이용을 막고 계속 소송을 걸어왔다. 수사당국이 아무리 ‘로톡은 무혐의’라 해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표현을 이럴 때 써야 하나.

기술 발전 속도를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사회 곳곳에 갈등의 불씨가 있다. 부동산, 세무, 의료 분야도 비슷한 상황이다. 자유롭고 미래지향적이며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한 때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온 김본환 로앤컴퍼니 대표는 최근 기자를 만나 부친인 고 김충남 전 연세대 야구부 감독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팀 훈련을 다니며 모두 함께하는 ‘합(合)’을 배웠다고 한다. 그곳에는 뒤처진 선수를 대화와 소통으로 일으켜 세우는 팀워크와 리더십이 있었다. 아버지가 전원 아마추어 선수로 구성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것은 사람과 돈의 결핍 속에서도 도전하는 스타트업 경영과 닮았다고도 했다.

기득권 카르텔이라는 적(敵)은 괴물의 모습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대로 이어져온 배경과 관습은 익숙한 얼굴로 혁신을 막는 건 아닐까. 청년 창업가들의 도전에 국가의 미래가 달렸다. 해외에는 로톡 같은 서비스가 이미 수천 개에 달한다. 한국도 혁신 스타트업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스타트업들이 법률가 출신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알고도 해결하지 않는 건 죄악”이라며 가시밭길을 가는 그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

#혁신 스타트업#기득권 카르텔#‘선비’와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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