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달랐던 큰 그릇[이준식의 한시 한 수]〈202〉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3일 03시 00분


산은 가깝고 달은 멀기에 달이 작다고 생각해서

이 산이 저 달보다 크다고들 말하네.

사람이 하늘만큼 큰 안목을 가졌다면

아마도 산은 작고 달은 더욱 장대해 보이리.

(山近月遠覺月小, 便道此山大於月. 若人有眼大如天, 還見山小月便闊.)

―‘산방에 가린 달(폐월산방·蔽月山房)’ 왕수인(王守仁·1472∼1528)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의 크기와 높낮이는 당사자가 가진 시야의 폭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어린아이의 시각에서는 산이 달보다 더 크게 보일 수도 있다. 상식 밖의 이런 판단을 하는 건 산은 가깝고 달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사람들이 ‘이 산이 저 달보다 크다’고 착각하는 이유를 단순히 물리적 거리에서 찾지 않고, 안목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하늘만큼 큰 시각을 가진 자라면 그 시야가 무한정 넓어서 세상 만물이 다 그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이렇게 해야 인간은 편협과 무지를 극복하고 보다 정확하게 사물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시는 시인이 열한 살 때 조부 친구들의 요청으로 즉흥적으로 지은 작품. 이 작품에 앞서 시인은 그 자리에서 이미 시 한 수를 지었는데, ‘한 점 주먹만 한 저 금산(金山)으로/물속에 비친 양주(揚州)의 하늘을 부수어볼거나. 술 취해 묘고대(妙高臺) 달빛에 기대어 있노라니/옥피리 고운 소리에 용마저 깨어날 듯’(‘무제’)이라 했다. 광활한 풍광을 눈앞에 두고 펼치는 어린 시인의 담대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기개, 철학자로서의 싹수가 유별났음을 보여준다.

왕수인은 양명학(陽明學)의 비조(鼻祖)답게 본명보다는 양명이라는 호로 더 유명한 인물. 앎은 실천의 출발점이요, 실천은 곧 앎의 완성임을 강조한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주창했다.

#큰 그릇#남다름#왕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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