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모여서 이야길 한다 물이 모여서 장을 본다 물이 모여서 길을 묻는다 물이 모여서 떠날 차빌 한다
당일로 떠나는 물이 있다 며칠을 묵는 물이 있다 달폴 두고 빙빙 도는 물이 있다 한여름 길을 찾는 물이 있다
달이 지나고 별이 솟고 풀벌레 찌, 찌,
밤을 새우는 물이 있다 뜬눈으로 주야 도는 물이 있다 구름을 안는 물이 있다 바람을 따라가는 물이 있다 물결에 처지는 물이 있다 수초밭에 혼자 있는 물이 있다.
―조병화(1921∼2003)
한 해의 첫 달은 1월이지만 어쩐지 희망찬 시작은 3월의 몫인 것 같다. 긍정적인 미래를 보고 싶을 때에는 조병화 시인이 제격이다. 그래서 3월을 맞이하여 조병화 시인의 시를 한편 소개한다.
호수를 오래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 시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시인은 호수라는 말에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를 걷어내고 호수의 진짜 모습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다다른 결론은 호수는 하나의 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다양성이 긍정되고 있다. 호수에 참여했던 모든 물이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움직임만 보였다면 호수는 호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시인이 제시하는 물의 다양성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이 시가 사람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아주 많고 다양한 사람이 모여 우리가 되었다. 똑같은 행동이나 표정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우리를 살 수 있게 했다. 그 사실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사는 것 같다.
이제 많은 개인이 새 교실, 새 공간에 모이는 개학과 시무식의 때가 되었다. 우리가 낯설도록 다르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다른 우리가 모여서 하나의 우리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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