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처럼 즐기는, 디지털 치료기기 시대 성큼[세상 바꾸는 과학/김형숙]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6일 03시 00분


‘내 손안의 주치의’가 온다

미국 ‘아킬리 인터랙티브’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 게임 ‘인데버 알엑스’를 한 아이가 사용하고 있다(위 사진). 
호버 보트를 타고 모험하는 레이싱 게임(아래 사진)으로, 4주 동안 일주일에 5일, 하루에 30분씩 하며 약물 치료도 병행한다. 한
 임상시험에 따르면 약 68%의 부모가 치료 후 자녀의 일상적 장애가 개선됐다고 응답했다. 사진 출처 아킬리 인터랙티브 홈페이지
미국 ‘아킬리 인터랙티브’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 게임 ‘인데버 알엑스’를 한 아이가 사용하고 있다(위 사진). 호버 보트를 타고 모험하는 레이싱 게임(아래 사진)으로, 4주 동안 일주일에 5일, 하루에 30분씩 하며 약물 치료도 병행한다. 한 임상시험에 따르면 약 68%의 부모가 치료 후 자녀의 일상적 장애가 개선됐다고 응답했다. 사진 출처 아킬리 인터랙티브 홈페이지
김형숙 한양대 한양디지털헬스케어센터 센터장
김형숙 한양대 한양디지털헬스케어센터 센터장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달 국내 첫 디지털 치료기기(디지털 치료제)를 허가했다. 불면증 치료기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솜즈’가 그 주인공이다. 국내 1호 디지털 치료기기의 탄생으로 의료 분야까지 디지털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 의료 체계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치료 방법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치료기기란 인터넷 소프트웨어, 앱, 게임, 확장현실(XR) 등을 이용해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관리하고, 치료하는 의료기기를 뜻한다. 기존의 약물 치료제를 보완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이를 대체해 독립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임상 연구와 의료 당국의 인허가를 거쳐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사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건강 앱 서비스 등과는 다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승인한 ‘솜즈’의 구동 화면. 수면 일기를 쓰고 수면 효율 등을 체크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승인한 ‘솜즈’의 구동 화면. 수면 일기를 쓰고 수면 효율 등을 체크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
사용 방식은 PC나 스마트폰에 관련 치료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뒤 의사 처방을 받아 환자 스스로 활용해야 한다. 예컨대 이번에 의료 당국의 허가를 받은 솜즈는 불면증 환자가 6∼9주간 사용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모바일 앱에서 환자가 수면 습관과 패턴을 담은 일기를 작성하면,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알람을 통해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야 하는 시간과 불면증 치료에 필요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알려 질병 개선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겉보기에는 비디오게임과 같은 디지털 치료기기도 있다. 2020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미국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기업 ‘아킬리 인터랙티브’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 게임 ‘인데버 알엑스’가 그것이다. 환자가 한 달 동안 하루 30분씩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집중력 향상을 자연스레 유도한다. 기존의 약물 치료제와 달리 즉각적인 효과는 약할 수 있지만 질병의 근본 문제점을 파악하고 장기 훈련을 통해 점진적인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디지털 치료기기의 적용 분야는 광범위하다. 이미 중독 치료, 천식 치료제 복약 관리, ADHD 치료, 불면증 개선, 소아 행동장애 진단 및 치료 분야의 기기들이 시판됐거나 개발 중이다. 대표 제품으로는 팰로앨토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료 앱 ‘프리스피라’와 인슐린 용량 조절을 돕는 볼런티스의 ‘인슐리아’ 등이 꼽힌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여러 강점이 있다. 우선 기존 신약 대비 개발 비용이 저렴하고 한 번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추가적인 제조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다. 또 의사 등 전문가를 만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디지털 치료기기를 통해 치료받을 수 있어 편리하고 시간이 절약되는 강점이 있다. 치료 앱만 설치하면 매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나의 주치의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개선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은데 가장 시급한 부분은 사용률 확대다. 2021년 페어 테라퓨틱스에 따르면 실제 환자의 사용률이 51%에 그쳤다고 한다. 환자가 지속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만큼, 디지털 치료기기의 콘텐츠는 재미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진료 및 처방을 하게 될 전문의뿐 아니라 콘텐츠를 그리는 게임·그래픽 전문가, 치료 효과가 있는 음악과 색감을 결정하는 예술치료 전문가, UI(유저인터페이스)·UX(사용자경험) 전문가 등이 콘텐츠 개발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래야 환자가 스스로 치료기기를 찾을 만큼 매력적이고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디지털 기술 리터러시는 디지털 치료기기의 개발에 매우 중요한 역량이다. 환자가 소프트웨어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디지털 치료기기 시장에서 경쟁력의 핵심이다. 미래 디지털 치료기기 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과 다양한 의료 분야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디지털 치료기기가 지속적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또한 디지털 치료기기를 사용하며 발생하는 사용자의 데이터가 플랫폼을 통해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치료기기뿐만 아니라 플랫폼이 있어야 사용자 맞춤형 처방이 가능한 선순환구조가 가능하다. 데이터를 통해 좀 더 정밀한 처방의 바탕이 되는 선순환을 이룰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약물치료만 할 때보다 더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뜨겁다. 디지털로 거의 모든 것을 구현하는 시대, 보다 질이 높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고민이 디지털 치료기기라는 신세계를 열었다. 일상에서 얼마든지 나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를 누리게 된 것이다.

한국은 정보기술(IT)과 문화콘텐츠 강국이다. 이런 강점을 살리면 현재 퍼스트무버가 없는 디지털 치료기기 시장의 선두 주자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단순히 의료의 영역이 아니다. 모든 산업이 주목하고 함께 가야 할 길이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모든 이와 기술, 문화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으론 사회경제적 비용 절감, 사회적으론 의료 사각지대 문제 해결, 국가적으론 새로운 일자리 창출 및 데이터 경제 주도라는 이점을 지닌다. 국내 첫 디지털 치료기기 승인 사례를 기점으로 더욱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와 관련 업계가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한 구체적 전략을 세우고 적극 실행해야 할 때다.

#디지털 치료기기#내 손안의 주치의#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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