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통계에 공식적으로 잡히지 않는 전세보증금을 반영하면 지난해 한국의 가계부채가 3000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경제 규모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다. 최근 전세금 하락에 따른 ‘역전세난’으로 보증금 반환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숨은 빚’이 가계부채 폭탄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공식 집계하는 가계신용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1867조 원이다. 여기에 1058조3000억 원으로 추산되는 전세보증금(준전세 포함)을 합하면 2925조3000억 원으로 3000조 원에 근접한다. 한국인 1인당 약 57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집값 상승과 임대차 3법 시행 등의 영향으로 2020∼2021년 전세금이 급등하면서 전세금을 포함한 가계부채 규모는 5년간 31.7%나 늘었다. 2021년 기준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OECD 31개국 가운데 4위지만 전세보증금을 포함하면 1위로 올라선다.
전세보증금은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사실상의 빚이다. 하지만 한국에만 있는 제도이고 개인 간의 거래라는 이유로 공식 부채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평상시엔 괜찮아 보이지만 전셋값 하락으로 보증금 승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여기다가 대출 목적상 사업으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가계부채나 다름없는 영세 자영업자의 부채까지 합치면 가계부채 규모가 3000조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에서 빠지는 부채를 고려하지 않으면 문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할 위험이 크다.
지난해 4분기에 가계부채가 공식적으로는 약 10년 만에 처음으로 전 분기 대비 줄어들었다. 부동산 경기 둔화와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였지만 부채의 절대 규모가 여전히 큰 데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빚까지 고려하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 등으로 주택담보대출이 다시 증가할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 고금리의 장기화로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이 취약해진 면을 감안해 부실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가계부채가 경제 회복에 부담을 주지 않고 연착륙할 수 있도록 기존 통계의 사각지대까지 메울 수 있는 촘촘한 관리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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