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많을 때는 한 주 69시간까지 일하고, 일이 적을 땐 휴가를 몰아서 쓸 수 있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정부가 어제 입법 예고했다. 경직적으로 운영되던 주 52시간 근무제의 유연성을 높여 기업의 인력 운용을 쉽게 하고, 노동자에겐 근로시간 선택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정부는 개정안을 6월 이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한다. 70년 전인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의 기본 틀이 바뀌는 큰 변화다.
개정안의 핵심은 근로시간 계산 단위를 1주(週)에서 월·분기·반년·연으로 다양화해 노사가 합의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단 한 주만 52시간을 넘겨도 불법이지만, 법이 통과되면 합의한 기간 중 평균 근로시간만 맞추면 된다. 근무일 사이 연속휴식 11시간을 보장할 경우 최장 주 69시간, 11시간 연속휴식이 아닌 경우 64시간 근무가 가능해진다. 추가되는 연장근무 시간은 1.5배의 휴식시간으로 저축해 뒀다가 사용할 수도 있다. 주당 24시간 연장근무를 4차례 한 근로자는 8시간 근무일 기준 18일의 장기휴가를 쓸 수 있게 된다.
주당 근로시간을 법정근로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으로 엄격히 정해 놓은 한국의 주 52시간제는 계산 단위가 1개월∼1년인 대다수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경직적이다. 일본은 연장 근로시간을 월 100시간, 연 720시간 한도 안에서 자유롭게 쓴다. 독일과 영국은 단위가 각각 6개월, 17주다. 획일적인 근로시간 규제 때문에 제품 개발 막바지에 일감이 집중되는 한국의 벤처기업과 기업 연구소, 계절성이 강한 기업들은 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중소기업에선 1.5배 임금을 받는 연장근로 시간이 축소돼 소득이 감소한 노동자들이 “정부가 왜 더 일할 기회를 막느냐”고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장 시대’에 만들어진 획일화된 근로시간은 한국의 경쟁력을 깎아 먹는 요인이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스타트업, 벤처기업의 발목을 잡아 선진국 기업과 경쟁하기 힘들게 만든다.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우려와 관련해선 노사가 합의해 근로시간 계산 단위를 늘려 잡을 경우 총연장근로 시간을 줄이도록 한 보완책 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급속한 진전, 프리랜서 형태의 ‘기그 노동’ 확산을 고려할 때 근로시간 유연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이제 노동자에게 일할 시간과 조건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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