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들의 그리스 사랑은 대단했다. 귀족 부호 집안은 그리스인을 가정교사로 두어야 했다. 로마에서 성공하려면 법률가가 되는 것이 최고였는데, 대중을 사로잡는 언변과 논리를 구사하는 유능한 변호사가 되려면 그리스 유학이 필수였다. 카이사르도 그리스 유학을 거쳐 법률가가 되어 정계로 입문했다.
이런 문명과 교양의 땅에 역사적인 전쟁터가 가득하다면 사람들은 믿기 어려워한다. 기원전 168년 아이밀루스 파울루스는 올림포스산 아래 피두스에서 마케도니아 장창보병대를 격파했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 신형 전술 대형의 위력이 증명되었고, 로마군은 세계를 제패할 자신감을 얻었다. 그의 아들인 스키피오 소 아프리카누스는 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완전히 멸망시켰다. 로마가 제국으로 가는 길에 벌인 두 번의 결정적인 전투,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대결한 파르살루스 전투와 카이사르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 암살자와 벌인 필리페 전투는 이탈리아 땅이 아닌 그리스에서 벌어졌다.
비잔틴 제국 시절, 제1차 세계대전 때도 그리스에서 국제적인 세력이 거듭 충돌했다. 그리스가 전쟁의 땅이 된 이유는 지정학적 요인이다. 지형이 요새 건축에 유리하고, 유럽과 중동, 오스만이 연결되는 교차로였다. 21세기 한국은 어떤가? 미국 일본 러시아와 중국이 대치하는 십자로이다. 냉전 종식 이후로 이런 의미가 좀 약화되나 했는데, 중국이 대만에 대한 위협을 강화하면서 지정학적 위협지수가 대폭 상승했다. 중국의 대만 공격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국내 문제가 아니다. 이젠 대놓고 제국주의 국가가 된 중국의 위협이 동남아로 확대되고, 한국과 일본의 생명줄인 해양무역로가 당장 중국의 관할 아래로 들어간다. 경항공모함 정도로는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인도를 잇는 쿼드 연합이 결성되었고, 한국의 외교적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지정학적 입지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변하고 생존을 위한 지혜를 요구한다. 먼저 깨닫고 준비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전쟁사의 영원한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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