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더불어민주당 비명계 의원 A에게선 이전과는 다른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는 한 주 전 치러진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에 대해 “일부러 짜라고 해도 저렇게 못 짠다. 저 묘한 숫자 속에 진정한 당의 총의가 담겨 있다”고 했다. ‘부결’(138표)보다 ‘가결’(139표)이 딱 한 표 더 나오고, 무효·기권이 20표 나온 것은 “이번엔 지켜주겠지만, 더 이상 기회는 없다”는 집단 경고라는 거다.
무엇보다 ‘패배의식’이란 그의 단어 선택에 공감이 됐다. 최근 만난 민주당 의원들에게선 ‘학습된 무기력’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번 표결이 이들에게 “우리도 바뀔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의 시작은 2020년 총선 이후부터였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180석을 확보하며 승리한 민주당은 21대 국회 들어 줄곧 ‘원 보이스’를 강조했다. 제2의 ‘조금박해’(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 등 소장파 의원 모임)를 막고, 열린우리당 시절의 ‘108번뇌’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초장부터 의원들을 잡겠다는 듯했다.
여기에 강성 지지층이 “기껏 180석이나 만들어줬는데 뭐 하고 있냐”고 가세했다. 민주당이 2020년 7월 임대차보호법, 2020년 12월 공수처법 개정안 및 경제 3법 등 무리한 입법 독주에 나선 이유다. 강성 지지층의 입김이 거세질수록 당내에서도 신중파나 협상파보다는 강경파 의원들이 득세했다. ‘처럼회’가 뜬 것도 이즈음이었다.
3년 새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의원들은 어느새 각자가 헌법기관임을 망각한 채 ‘군사 작전’의 일부처럼 길들여져 갔다.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과 함께 등판한 ‘개딸’들의 성화에 이들의 침묵은 더 길어졌다. 한 비명계 초선 의원은 “돌이켜 보면 지난 총선 이후 의원들은 늘 ‘컨트롤’의 대상이었다. 원내에선 당 지도부가 당론을 강요했고, 원외에선 개딸들의 등쌀에 알아서 눈치를 보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비명계 중진 의원은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를 보고 ‘이제 나도 더는 참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동료들이 많았을 것”이라며 “점점 더 목소리를 내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늘어날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
이들 사이에선 “더 이상 개딸이 두렵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복수의 비명 의원들은 “그동안 전화번호를 한 3000개 정도 차단했더니 이젠 문자테러도 거의 안 온다”고 했다. 극성 개딸 규모가 대략 3000명 안팎일 거라는 거다.
실제로 변화가 조금씩 감지된다. 최근 일부 의원들은 중앙당에서 내린 ‘반일’ 현수막 게시를 거부했다. ‘이완용의 부활인가!’ 등 자극적 문구가 오히려 지역 여론에 역풍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개딸들이 지역구별 현수막 게시 건수를 토대로 ‘수박 색출’ 작업 중이라지만 이들에겐 당장 내년 총선이 더 중요해진 거다.
A 의원도 이제 좀 달라진 민주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태극기부대와 선 긋고 승리했듯이, 우리도 개딸과의 결별에 성공해야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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