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를 놓고 지난달 기획재정부와 협의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건보는 매우 특이하다(highly unique)”는 평가를 내놨다고 한다. OECD 회원 선진국 대다수는 세금이 들어가는 건보의 지출 항목, 증가율 등을 정부와 국회가 통제하는 데 비해 한국 건보는 외부 관리 없이 막대한 돈을 쓰고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특히 OECD가 문제로 지적한 부분은 한국 정부가 건보 지출을 모니터할 수 없고, 지출 증가율을 정할 수 없는데도 정부 예산이 ‘자동적으로’ 투입된다는 점이었다. 건강보험공단의 회계로 관리되는 건보는 2007년부터 연간 수입의 최대 20%를 국고에서 지원받고 있다. 처음엔 한시조항이었지만 계속 연장되다가 작년 말 여야 의견 차로 일몰기한이 끝나 지원 근거가 없어졌다. 그런데도 올해 11조 원의 예산지원이 예정돼 있다.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지만 건보의 지출규모, 보험료율 등은 보건복지부 장관 자문기구인 ‘건강보험 정책심의위원회’가 결정한다. 위원 25명 중 의약업계 인사와 정부 측 인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의료복지 확대 요구, 의약계의 이권 챙기기 등이 걸러지지 않고 곧바로 지출로 연결되기 쉬운 구조다.
건보지출 규모가 불어나면서 재정에 부담을 줄 가능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작년 지출 규모는 86조6000억 원으로 건보제도가 통합된 22년 전의 8배다. 초음파·MRI 검사의 환자 개인부담을 줄인 2018년 ‘문재인 케어’ 도입 후 지출은 37% 급증했다. 건보 정책심의위가 건보료율을 계속 올리지만 역부족이다. 올해 직장인 건강보험료 부담액이 작년보다 월 2000원 정도 올랐는데도 1조40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현 추세대로면 2029년에 적립금이 바닥나 정부의 예산을 투입해 달라는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한국의 8대 사회보험 가운데 정부 예산에 편입되지 않고 별도 회계를 운영하는 건 건보와 노인장기요양보험뿐이다. 국민·공무원·군인·사학연금과 고용·산재보험은 재정추계 등을 통해 예산당국과 국회의 심사를 받고 있다. 불과 3년 뒤인 2026년에 한국은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다. 견제 받지 않는 건보의 지출 규모는 더욱 빠르게 불어날 것이다. 국민이 낸 보험료와 세금이 불필요한 곳에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늦기 전에 외부통제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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