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병무청 합동수사 결과 뇌전증 등 정신질환자 행세를 해 병역 면탈을 받아 기소된 피고인이 래퍼 라비(본명 김원식)와 나플라(본명 최석배), 프로배구 선수 조재성, 배우 송덕호(본명 김정현) 씨 등 109명에 이른다. 이들은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브로커를 통해 발작 등의 증세를 거짓으로 꾸며 발급받은 진단서를 병무청에 제출해 병역을 감면받은 혐의다.
병역면탈자의 부모 등 21명도 공범으로 기소됐다. 그중에는 부장판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와 한의사도 포함돼 있다. 검찰은 전관 변호사의 경우 그가 브로커의 변호사 선임을 돕는 등 범행 가담 정도가 적극적이었다고 봤다. 병역은 입시와 더불어 우리 사회가 그 공정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인 만큼 부모들의 신원과 행적도 가능한 한 더 충실히 공개돼야 한다.
서초구 사회복무 담당 직원, 서울지방병무청 복무지도관 등 공무원 5명도 기소됐다. 이들은 서초구 사회복무요원으로 배정된 래퍼 나플라의 우울증이 악화되지 않았고, 서초구청에 출근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상 출근한 뒤 지각 조퇴 병가 등을 자주 받은 것처럼 출근부를 조작해 그의 소집해제를 도와주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병역면탈자들의 병세를 판정해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들은 기소되지 않았다. 검찰은 피고인 측에서 증세를 꾸며 의사들이 진단서를 발급하게 만들었다고 봤다. 뇌전증 환자 중 30∼40%는 자기공명영상(MRI) 진단에서 이상 소견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가족이나 지인이 발작의 목격자로 나선 허술한 ‘쇼’에 그렇게 쉽게 병무용 진단서가 발급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병역법 위반 공소시효가 남은 뇌전증 환자를 전수 조사해서라도 협조한 의사가 있는지 밝혀내야 한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대규모 병역비리 사건이 터진다. 이번 병역비리는 뇌전증을 활용했다는 점이 특이할 뿐 브로커들이 인터넷에서 의뢰인을 모집한 것이기 때문에 병무당국이 경각심을 갖고 있었다면 더 빨리 밝혀내 빈틈이 있는 제도의 개선을 모색할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병역비리가 점점 더 지능화하는 만큼 병무당국의 대처도 더 영리하고 더 세밀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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