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일제징용 배상안은 굴욕뿐”
해결 아닌, 반일감정 자극 정치는 쉽다
일본에 사죄와 반성 요구하는 야당대표
남의 생명 귀한 줄은 알고 입을 여는가
마침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때를 만났다. 사법리스크와 대표직 사퇴 요구에 시달리던 그가 일제 징용 ‘제3자 변제’ 방안 발표에서 살길을 찾은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5일 이재명은 “윤석열 정권이 일본의 사죄와 반성은 뒷전으로 둔 채 조공보따리부터 챙기고 있다”며 “하나부터 열까지 굴욕”이라고 시퍼런 비수를 던졌다.
정부 배상안 발표에 흔쾌히 박수 치는 국민은 많지 않다. 그러나 언제까지 과거사에 매달려 일본과 원수처럼 살아야 하느냐는 지적도 작지 않다.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인 고 정상화 씨의 아들 정사형 씨도 “일본을 용서하긴 힘들지만 우리 세대에서 매듭짓고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라고 했다. 피해자 측 임재성 변호사에 따르면 피해자 15명 중 정 씨를 비롯한 4명의 유족이 정부안에 동의했다고 한다.
진작 이런 해결책을 내놓았어야 하는 게 정치다. 대통령은 특정 정파 아닌 나라 전체를 위하라고 국민이 뼈 빠지게 일해 세금 바치는 거다. 그럼에도 과거 대통령들은 너무 쉽게 반일 감정을 자극해 지지율만 반짝 올리고 국익은 외면했다.
2018년 말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이 나오자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이듬해 3·1절 있지도 않은 친일 청산을 말했다. 8월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며 ‘관제 민족주의’에 불을 질렀다. 덕분에 지지율이 45%에서 48%로 올랐지만(갤럽)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대(對)일본 수입액 역시 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도 흔들렸다. ‘1민족 2국가연합’이라는 남쪽 대통령의 꿈을 국민은 정권교체로 단호히 심판했다.
반일 감정으로 잠깐 재미 봤던 민주당이 이번 같은 폭발성 보따리를 놓칠 리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이재명은 일본에 사죄와 반성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이유는 첫째, 사법리스크 방탄을 위한 사욕이 너무나 분명해서다. 그는 작년 10월에도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해 “일본의 군사이익을 지켜주는 극단적 친일 행위”(7일), “일본군의 한반도 침투? 욱일기가 다시 한반도에 걸리는 날? 그런 일이 실제로 생길 수 있다”(10일)며 정부를 공격했다. 그 덕에 10월 1주 32%였던 민주당 지지율이 2주엔 38%로 뛰어오른 것도 사실이다(갤럽).
문제는 이때가 국정감사 기간이었다는 점이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백현동 용도 변경 의혹 자료와 증언이 쏟아지고 말 잘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정부처럼 캐비닛 뒤져 만든 수사가 아니다”라고 기삿거리를 쏟아냈다. 이재명은 죽창가로 자신의 의혹을 덮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북한은 사실상 세계 4∼5위의 핵 무력국이어서 한미일 안보협력도 불가피하다”는 마당이다. 당 대표가 ‘죽창가2’나 부르냐는 비판이 나오면서 일주일 만에 민주당 지지율은 33%로 내려앉았다.
이재명이 나서면 안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역사에 무식하기 때문이다. 그는 2017년에 낸 책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동학혁명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은 거세게 일기 시작한 동학혁명의 불길을 끄기 위해 일본군을 끌어들였다”고 적었다(210쪽). 틀렸다.
조선 왕조가 지원병을 요청한 나라는 세계열강에 뜯기고 있던 청나라였다. 청나라가 군대를 파견하자 일본도 톈진조약 3조(청일 어느 한쪽이 파병할 경우 우선 상대방 국가에 알린다)에 따라 군대를 보냈던 거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중화세계는 무너졌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리더는 차라리 낫다. 그러나 이재명처럼 자신이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이나 하면서, 절대 물러서지도 않는 리더는 나라와 국민에 재앙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그로 인해 다섯 분이나 극단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과 연루돼 귀한 목숨을 스스로 내려놓았는데도 이재명은 “모른다”며 춤까지 추었다. 남의 생명과 감정을 중히 여기지 못하는 사람이 남의 나라에, 감히, 사죄와 반성을 요구할 순 없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야권 대부분이 반대했던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대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안보와 경제를 생각해 일본을 우방으로 끌어들여야만 했다’고 2010년에 낸 자서전에서 밝혔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미국과 세계는 야당의 거센 저항에도 한일협정을 이끌어낸 박정희 정권을 신뢰하기 시작했다”고도 했다(1권 170쪽). 민주당은 냉철히 판단하기 바란다. 이재명과 더불어 과거에 처박힐 건지, 이젠 털어내고 국민과 함께 갈 것인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