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필자는 막내 기자로 대통령직인수위와 청와대 취재를 담당했다. 새 정부 출범 직전 한 친박 관계자가 사석에서 “청와대 로고를 바꾼다”며 새 로고를 보여줬다. “옛날 거랑 비슷하다”고 하자 펄쩍 뛰면서 “지금까진 ‘청와대’ 아래 ‘대한민국’ 표기가 있었는데 ‘대한민국’을 ‘청와대’ 위로 올렸다. 새 정부 철학을 보여주는 엄청난 변화”라고 했다. 이어 “인턴이 디자인해 돈 한 푼 안 들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로고는 바뀌었지만 필자 마음속엔 ‘정말 엄청난 변화라면 전문가 심의 등 제대로 절차를 거쳤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았다.
나중에 돌아보니 다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 건 올리기’에 혈안이 돼 있던 시기였다. 정권 재창출을 해도 주요 보직이 모두 바뀌는 청와대에서 제대로 된 인수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다.
얼마 전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로 지명됐던 정순신 변호사의 사퇴를 지켜보며 당시 생각이 났다. 정부는 정 변호사가 “본인·배우자·직계존비속이 관계된 민사·행정소송이 있느냐”는 검증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해 자녀 학교폭력 내용을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 정부에서 이 항목의 질문은 “민사소송에 연루된 적 있거나, 현재 당사자로 진행 중인 재판이 있느냐”였다. 행정소송을 추가한 것까진 좋았는데 과거 소송 경험을 묻는 표현을 제외해 정 변호사가 “진행 중인 소송만 묻는 줄 알았다”며 법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길을 터줬다.
정권 재창출을 해도 인수인계가 어려운데 정권이 교체된 경우는 오죽할까. 하지만 국민을 위해서라도 이어갈 건 이어가고, 배울 건 배워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잘한 일을 이어가는 것만큼이나, 잘못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간 협력 등을 제외하면 가급적 여론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일에는 손대지 않았다. 연금 개혁, 노동시장 개혁 등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를 담당했던 필자가 장기 개혁 과제를 언급하면 “현안이 산더미인데 지지율 깎아 먹을 일 있나” “여론 지지 없이는 어차피 실현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첫해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들고나왔다. 하나하나 정권의 명운을 좌우할 민감한 주제이고 국가적으로 꼭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런데 연금 개혁안 준비는 계속 미뤄지고 있고, 노동시장 개혁은 여소야대 국회에 막혀 있다. 이를 보며 지금까지 안 된 이유를 충분히 스터디한 후 실행에 착수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난 정부에서 개혁이 안 된 건 중요한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었다. 의욕만큼이나 치밀한 복습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무효’라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공식 합의임을 인정한다”며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후속 조치는 없었고 강제징용 문제도 건드리지 않았다.
반면 현 정부는 의욕을 갖고 해법을 내놨다. 하지만 과거사는 더더욱 의욕만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필자는 도쿄특파원으로 위안부 합의를 옆에서 지켜보며 역사적 문제에 대한 해법은 피해자에 대한 존중과 역사에 대한 겸허함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 위에서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정교한 전략을 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필자가 경험한 일본은 통 큰 상응 조치를 취하는 나라가 아니라 서명한 협약서의 한 단어, 한 표현의 해석을 두고 집요하게 매달리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를 상대로 개문발차(開門發車)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는지, 윤 대통령의 방일이 마무리된 지금도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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