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식당서 받는 세심한 ‘존중’ 일터에도 필요
소통 어렵다는 MZ세대 존중받길 원하는 것
자주 묻고 듣는 것, 상대 존중하는 현명한 방법
책방 근처에 가끔 가는 분식집이 있다. 모든 분식집이 그렇듯 이 집도 손님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라면 둘이랑 꼬마김밥 네 줄요!’ 음식을 주문하면 그걸로 끝. 그러니까 여기선 ‘라면 면발을 꼬들꼬들하게 해드릴까요? 아님 좀 풀어진 게 좋으세요?’라든가 ‘떡볶이는 덜 맵게 해드릴까요? 아주 맵게 해드릴까요?’ 같은 걸 묻지 않는다.
반면, 고급 한정식 집이나 레스토랑에선 여러 가지를 묻는다. 혹시 드시지 못하는 음식은 없는지, 샐러드의 드레싱은 어느 걸로 하겠는지, 메인 디시는 무엇으로 하고 고기는 어느 정도로 구우면 좋을지, 후식은 어떤 걸로 할지 등 손님에게 선택지를 주고 고르게 한다. 또 음식이 나올 때마다 재료며 요리법, 먹는 방법을 세세하게 설명한다. 손님의 식사 속도며 취향, 요구를 정성껏 살펴 응대한다. 이런 대접을 받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우리는 이런 응대를 비싼 레스토랑에서만 받아야 할까? 아니다. 회사,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긴 일상을 함께하는 일터야말로 그래야 하고 존중해야 한다. 구성원들이야말로 회사의 미래, 아니 모두의 미래를 맡고 있는 귀한 사람들이니까. 그렇다면 존중은 어떻게 하는 걸까? 구성원들은 회사와 리더가 어떻게 하면 존중받는다고 느낄까?
책방을 하기 전 나는 꽤 좋은 일터에서 29년을 일하고 퇴직했다. 연봉이나 복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선배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네 생각을 말해 봐.’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그저 그런 얘기를 할라치면 그런 거 말고 네 생각, 너만의 생각을 말해 보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늘 내 아이디어가 채택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선배들이 내 생각을 묻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은 근사한 경험이었다.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요 몇 년 ‘책 동네’에선 기이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책을 사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책을 내는 사람은 늘고 있다. 왜일까? 다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거다. 한참 전, 나는 이 점을 선명하게 경험한 바가 있다. 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서울’에서 강의할 때였다. 본격적인 강좌를 시작하기 전, 런던 인생학교에서 트레이너들이 와 서울의 강사들과 워크숍을 가졌다. 그때 그들이 누누이 강조한 게 있다. 강사 혼자 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수강생들끼리 토론하고 발표하게 하라는 것. 한국 사람들은 남들 앞에서 자기 생각을 잘 말하지 않는데 과연 될까, 나는 속으로 걱정했다. 그런데 웬걸. 수강생들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토론했고 시간이 모자랄 만큼 열띠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때 알았다. 아, 사람들 가슴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득하구나. 자기 생각이 없거나 주관이 없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아니구나. 분위기가 되지 않고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 생각을 자기 안에 넣어두었던 거구나.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기업마다 HR(인적자원) 이슈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듣고 있다. 특히 자아가 강한 MZ세대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함께 일해야 할까를 두고 고민이 큰 것 같다. 나는 MZ세대들의 호칭에서 심플한 해법 하나를 발견한다. 그들은 서로를 부를 때 지위 고하, 나이 불문 그저 ‘○○님’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내게도 ‘최인아 대표님’ 대신 ‘인아님’이라고 한다. 그들은 직급 이전에, 나이 이전에, 한 사람의 개인으로 존중하고 존중받기를 원한다는 뜻 같다. 그런데 ‘선진국’ 대한민국의 어느 일터에선 아직도 이런 풍경이 벌어진다. “부장님, 제 생각엔요….” “안 물어봤거든. 시키는 거나 제대로 하지!” 이런 상사와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더 잘해 보려 애쓸 마음이 날까? 존중하는 마음이 있을 땐 이렇게 대하지 않는다. 이건 전형적으로 갑이 을에게 하는 방식이다.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들은 어쩌면 존중받지 못해서 마음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크든 작든 조직의 리더들이 지금부터 할 일은 상대를 존중하는 거다. 어렵지 않다. 일방적으로 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는 것. 자주 생각과 의견을 물어보는 거다. 최대한 반영하려 하되 그러지 못할 땐 이유를 말씀하시라.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소통이 된다. 시작은 관점을 바꾸는 거다. ‘저이는 그저 나이 어린 부하가 아니라 같이 일해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할 소중한 파트너다’라고. 상대를 존중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을 자주 물어보시고 귀 기울이시라. 상대를 존중하는 현명하고도 간단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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