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9∼16편)가 공개된 후, 이 완벽한 복수극에서도 구태여 흠을 잡는 사람들은 동은(송혜교)과 여정(이도현)의 로맨스 분위기를 문제 삼기도 한다. 온전히 복수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도 충분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이 칼럼에는 ‘더 글로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김은숙 작가와 주연 송혜교 배우는 세상 온갖 상황에서도 사랑은 꽃핀다는 메시지를 던져온 로맨스의 아이콘들이다. 천생 로맨스 재질이라고 감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연애할 때가 아니니까 긴장 풀지 말라는 주문을 하게 되다니. 그만큼 이 복수극의 매력이 압도적이라는 의미다.
이 드라마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현실에선 이뤄지지 않는 권선징악에 사람들이 대리만족했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미진하다. 애초에 모든 복수극은 대리만족을 통한 판타지적 쾌감을 노리는 장르다. 이 드라마가 돋보인 건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 이상으로 지난한 복수 과정 속에서 의미를 담아내고. 과정에서 몰입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복수 장르에선 오래된 격언이 있다. 복수는 차갑게 식혀 먹을 때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복수란 이뤄지는 시점보다 이를 실행하려는 의지와 이를 향해가는 일관된 과정이 더 중요하다. 공들여 쌓아온 복수는 차갑게 식혀 먹어도 군침이 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제대로 짜인 복수극에 갈증이 있다. 밑바닥부터 극한까지 감정을 끌어올린 다음 폭죽처럼 터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 한다.
이 갈증은 한국식 기존 막장 드라마의 복수로는 해소가 안 된다는 사실을 더 글로리를 보면서 깨달았다. 복수를 소재로 해도 냉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막장 드라마는 처음부터 시비만 안 걸면 싸울 일도 없다는 무해한 주인공이 드라마 방영 기간 동안 악인에게 ‘갈굼’을 당하다가 방영 후반쯤 우연한 계기로 별안간 지위 역전이 이뤄지면, 그게 복수라고 주장한다. 드라마 방영 내 복수가 차지하는 비중보다 갈굼 비중이 더 높다.
응징할 대상을 그야말로 쓸어버리는 영화 ‘테이큰’이나 ‘존 윅’ 스타일은 오락의 쾌감은 있을지언정, 감정이입을 통해 카타르시스까지 큰 낙차를 만들어내진 못한다. 총이라는 형태로 복수의 능력이 그들의 손에 쉽게 쥐여져 있어서다. 반면 더 글로리는 주인공 동은이 복수의 능력을 하나씩 채워가는 과정에 매우 진심이다. 복수의 동기를 보여주는 장면들은 드라마 중 초반에 몰려 있고, 2화부터는 상대적으로 덜 할애된다. 그 대신 복수를 준비해 나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창작 관점에서 이 지지부진한 복수의 준비 과정을 견딘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작가라면 당장 주인공 손에 총을 쥐여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는 총 대신 쓰레기를 뒤지면서 시간을 견디는 인간을 비춘다. 여기엔 파괴된 존엄을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개인에게 중요한 일인지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드라마 속 지난한 복수 과정을 따라가는 동안, 고군분투하는 동은에게 운이 따른다는 설정이 납득이 간다. 동은이 조력자를 만들어가는 방식도 그렇다. 자신이 구태여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하고, 깊이 공감하고, 악인들을 응징 대상으로 삼을 때도 변하지 않았다고 안도한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깊이 감정이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바로 즉각적이고 뜨거운 응징에선 느낄 수 없는, 차가운 복수극의 묘미다.
잘못한 자 벌 받는다는 종교적 운명론이나 명분론에 기대는 대신 주인공 동은이 감정의 수호자로서 복수를 말하는 점이 특히 섬세하다. 동은은 명분과 운명에 관심이 없다. 그건 종교에 심취한 가해자의 몫으로 둔다. 열여덟 살 어린 동은의 꿈과 감정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복수의 명분은 충분하다.
동은의 복수 조력자인 현남(염혜란)의 “나 빨간 립스틱 바를 거야. 가죽 잠바도 입을 거야”라는 대사도 그렇다. 그들에겐 그저 소박한 감정의 영역이 훼손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동은이 복수를 다짐하게 됐던 순간도 가해자 연진(임지연)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현모양처’라는 꿈을 들은 뒤다. 우리에게서 사소하고 소박한 감정들이 소실되지 않도록, 나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서로가 지켜줘야 한다는 메시지가 복수 끝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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