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표결 4392회 분석해 봤더니
비례대표, 초선이 정치 양극화 극단에 서
다양성, 전문성 기대 저버린 ‘정치의 퇴보’다
‘국회의원 정수 확대’ 얘기가 나오니 총선이 다가옴을 실감한다. 극단 대립으로 점철된 국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바닥이다 보니 저마다 ‘정치 개혁’을 외치지만 결국 ‘국회의원 정수 확대’, ‘비례대표제 확대’, ‘공천 컷오프’ 등 ‘단골 메뉴’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단골 메뉴로 지금의 양극화 정치를 바꿀 수 있을까.
‘비례대표제’는 정당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기도 한다. 지역구 이익이 아닌 다양성과 전문성을 입법에 반영하는 경로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체 의석 300석 중 47석을 비례대표로 선출한다. 선거제 개편 논의가 뜨거운 가운데 비례대표 확대 얘기도 들려온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두 거대 정당은 세계 의회 정치사 교과서에 소개될 만한 ‘비례 전용 위성 정당’을 창당했다. 정당 득표율과 실제 의석수 간 불일치를 해소한다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이름도 생소한 제도를 도입한다더니 선거가 임박하자 대표성과 다양성 제고라는 본래 취지는 뒷전이 되고 각자 선거 승리를 위해 만든 것이 ‘위성 정당’이었다.
필자는 21대 국회에서 이루어진 4392회의 표결 기록을 분석해 각 국회의원들의 표결 성향을 추정했다. 현재 의원직을 유지 중인 296명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했다. 미국 정치학계에서 활용되는 ‘베이지언 문항 반응’ 모델을 적용해, 유사한 표결 경향을 보이는 의원들에게 유사한 점수가 부여되도록 했으며 진보적인 표결 성향을 음수(―), 보수적인 표결 성향을 양수(+)로 점수화하였다.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는 통계 분석이다.
이번 분석에서 평균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비례정당 소속 포함)은 ―1.288, 국민의힘 의원들은 ―0.172 정도의 표결 성향을 보여 두 거대 정당 간 이념 성향 차이가 1.116에 달했다. 참고로 정의당 의원들은 ―2.195 정도였다. 필자의 과거 분석에서 17대에서 20대까지 거대 정당 간 표결 성향 격차가 0.550점→0.787점→0.889점→0.890점으로 벌어진 것으로 나타난 바 있는데 21대 국회 들어 양극화가 극에 달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21대 국회는 ‘양극화 정치의 끝판왕’으로 등극할 것이 유력해 보인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본래 취지대로 이런 양극화 해소와 대표성 제고에 기여했을까.
기대와는 달리 양 거대 정당의 비례대표 의원들이 오히려 정치 양극화의 중심이었다. 다수당인 민주당의 경우 지역구 의원들의 평균 표결 성향이 ―1.276 정도였던 데 반해 비례대표 의원들은 ―1.394로 ‘진보’ 쪽 극단에 상대적으로 더 가까웠다. 민주당의 8% 정도를 차지하는 비례대표들이 민주당에서 가장 ‘진보’적인 의원 10명 중 5명이나 차지했다.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들의 평균 표결 성향도 ―0.072로 나타나 지역구 의원들의 ―0.196보다 상대적으로 더 ‘보수’ 쪽 극단에 가까웠다. 국민의힘의 15% 정도를 차지하는 비례대표 의원들도 국민의힘에서 가장 ‘보수’적인 의원 10명 중 3명을 차지했다. 대표성과 다양성 제고에 기여해야 할 비례대표 의원들이 실제로는 내년 총선 지역구 공천을 받기 위해 지도부의 ‘행동대원화’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국회 개혁’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정치 신인’의 발굴이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바닥 수준이다 보니 현역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하고 신선한 인물로 대체함으로써 개혁을 해 보자는 취지다. 그렇다면 21대 국회 초선 의원들은 정치 양극화 해소에 기여했을까.
‘정치 신인’들도 기대를 저버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1.320, 재선 이상 의원들은 ―1.258의 평균 표결 성향을 보여 초선이 약간 더 ‘진보’ 쪽 극단에 가까웠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은 ―0.081, 재선 이상 의원들은 ―0.280의 표결 성향을 보여 역시 초선이 ‘보수’ 쪽 극단에 더 가까웠다. 비례대표를 뺀 지역구 초선 의원들만 분석했을 때도 민주당은 ―1.299(초선)와 ―1.259(재선 이상), 국민의힘은 ―0.096(초선)과 ―0.284(재선 이상)로 두 정당 모두 초선이 약간 더 극단에 가깝거나 ‘기성 정치권’과의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필자가 2010년 동아일보와 함께 국내 처음으로 국회의원(18대) 표결 성향을 분석했을 당시에는 양 정당의 초선 의원 모임들이 주류 의원들보다 중도 성향을 보인 바 있다. 우리 국회는 분명히 퇴보 중이다. 더 이상 비례대표제나 ‘공천 컷오프’가 두 거대 정당의 ‘행동대원 양성 루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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