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식 선동술[임용한의 전쟁사]〈255〉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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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9월 12일, 독일 뮌헨의 한 맥주 홀에서 독일노동자당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당명은 거창하지만 소그룹에 불과한 집단이었다. 그래도 감시와 동태 파악을 위해 군에서 파견한 스파이가 참석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아돌프 히틀러였다.

히틀러는 단순한 스파이가 아니었다. 군 정보대 책임자였던 카를 마이어 대위는 귀동냥 수준의 첩보 수집이 아니라 조직에 들어가 유능하게 활동하고, 대중선동도 할 수 있는 요원들을 양성하려고 했다. 마이어는 선발한 요원을 뮌헨 대학에 보내 기초적인 사회과학 공부와 연설 교육을 시켰다. 그 프로그램에서 우수한 역량을 발휘한 사람이 히틀러였다.

그날 연사는 뮌헨 대학에서 히틀러를 가르쳤던 교수였다. 청중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히틀러는 더 시큰둥했고 답답하다고 느꼈다. 그가 자리를 뜨려고 할 때 다른 교수가 등장해 이런저런 주장을 폈다. 히틀러는 분노했고, 뛰쳐나가 한바탕 열변을 토했다. 히틀러의 연설을 듣던 노동자당 대표는 즉시 히틀러에게 달려가 당에 가입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정치가 히틀러의 삶이 시작된다.

실업중학교 중퇴의 학력뿐인 히틀러는 명연설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맥주 홀 연설은 유명해져서 나중에는 수천 명이 모였다. 열광적인 지지자들을 얻은 히틀러는 당을 장악하고, 1934년에는 나라를 장악했다. 5년 후에는 유럽과 소련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한다.

히틀러의 연설은 무엇이 특별했던 것일까? 히틀러는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대중의 마음속에 있는 소망을 읽고,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해라.’ ‘지도자가 신념에 찬 모습을 보이면 대중은 따른다.’ 이 무서운 이론을 히틀러는 스스로 증명했다. 한 가지 예로 그는 세상을 갈라놓은 두 이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도 모두 유대인이 만든 음모라고 설명했다.

‘유대인만 없어지면 전쟁, 빈부 갈등, 풍기 문란에 파렴치범까지 사라진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믿을까? 수많은 대중이 믿었다. 지금도 믿는다. 유대인 대신 다른 단어를 집어넣으면 즉효가 나타난다. 이런 선동술은 히틀러만의 작품은 아니다. 역사 속에, 전 세계에 있다. 히틀러는 성공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히틀러식#선동술#임용한의 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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