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미용실이 효자동에 있다. 원장님의 손끝이 섬세해 끊을 수가 없다. 거기 더해 원장님은 현대 미용사의 가장 큰 덕목인 과묵함을 갖고 계신다. 나를 본 지 10년 가까운데도 아직 내 직업을 묻지 않고 가끔 동네 이야기만 해 주신다. 최근 들은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 후 동네 식당이 몇 개 문을 닫았다고 한다. 시위 때문에. 시위대도 의경도 시위 전후로 밥을 사먹어야 하는데 대통령이 없으니 시위도 없고, 시위 식객(?)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와대 이전 이후 경복궁역 근처의 쾌적함은 비교 불가 수준이다. 나는 촛불시위 때 이곳에 이발 예약을 했다가 가는 데에만 두 시간 걸린 적이 있다. 시청역에서 내려 시위대와 함께 머리를 하러 걸어 올라가야 했다. 그 정도의 초대형 시위가 아니어도 청와대 근처 주택가의 주말 소음은 상당했다. 주말에 미용실을 찾으면 대화가 쉽지 않을 때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 소음마저 권력 근처에 거주한다는 상징으로 느꼈을 정도다. 이제 다 옛날이야기다.
서울시민 입장에서 나는 지난 정권 때 일어난 큰 변화 중 하나가 서초동 법원 앞에서의 시위라 생각한다. 드디어 강남 사람들이 시위의 불편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지난 5년 동안 시위가 종로구만의 것에서 서울 각지의 것으로 확산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세검정이 본가라 평생 이곳을 왔다 갔다 해온 입장에서 ‘이 불편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라는 마음도 든다. 상호 이해라는 관점에서….
청와대 앞 시위는 이제 용산에서 열린다. 나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도 긍정적으로 본다. 역시 더 많은 시민들이 각종 시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서울 시내로 보면 조금 외진 곳이라 시위를 해도 인근 주민에게 알려질 뿐이었다. 용산은 다르다. 운전을 해보면 안다. 용산은 서울 도로망의 중심점이다. 용산이 막히면 온 서울이 막힌다. 이제 서울시민들은 이 도시와 국가의 각종 갈등을 피부로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약간의 불편을 통해야겠지만.
한 가지 파생 효과가 있다. 외출 범위가 줄어든다. 나는 서울을 ‘사사분면’으로 나누었을 때 서울 서북 권역에 사는데, 이제 웬만하면 주말에 강남3구 등 동남 권역에 가지 않는다. 거의 매주 주말 시위가 열리니 자동차나 버스로 가면 정체가 너무 심하다. 예를 들어 주말에 분당까지 운전해서 가는데 시위 관련 정체라도 걸린다면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갈 때와 비슷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만 그런 체험을 하는 게 아닐 테니 서울 상권은 이제 점점 권역 분화가 심화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회사가 용산에 있다. 주말에 사무실에 두고 온 게 있어서 삼각지역에서 내리니 역시나 저 멀리 어딘가에서 대형 스피커로 울리는 시위대의 연설 소리가 들렸다. 청와대 앞 미용실에서 듣던 그 소리다. 그걸 듣고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시위가 끝나면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용산 시위 때문에 이 동네 국숫집들은 조금 더 장사가 잘될까. 시위가 끝나면 어떤 세력이든 다 같은 식당에서 소주라도 한잔 마시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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