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주목받아 온 K팝 인기에 대한 반작용일까. 최근 서구 언론들이 K팝에 불편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비인간적인 대우와 완벽주의, 가혹한 훈련 기반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얼마 전 CNN과 인터뷰한 하이브 방시혁 의장, 스페인 대표 일간지 엘파이스와 인터뷰한 BTS RM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K란 수식어가 지겹지 않냐”고도 직설적으로 물었다.
일각에서는 이런 질문에 대해 “무례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서구 언론의 ‘삐딱한 질문’ 뒤엔 대중문화의 주류 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K컬처에 대한 견제와 콤플렉스가 깔려 있을 거란 분석도 나왔다. 과연 그럴까.
개인적으로는 이들이 한국인을 지배하는 비판적인 자아상을 정확하게 집어내 질문을 던졌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 막히는 경쟁, 성과 지향적인 문화, 타인과의 비교에 염증이 난 우리 사회 스스로가 ‘헬조선’ ‘K지옥’이란 말을 이미 써왔기 때문이다.
“K가 지겹다”는 말 역시 이미 내부에선 오래전부터 나왔다. 세계 속의 K는 브랜드가 됐지만, 정작 한국인들에겐 ‘K직장인’(노동집약적이고 위계적인 직장 생활의 희생양) ‘K장녀’(속박적인 가족 문화의 희생양)에서처럼 자조의 접두어이기도 하다. 막상 밖에서 들으니 기분이 더 나빴던 것일 뿐, 사실 그들의 질문은 우리의 목소리였다.
생각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K를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는 점은 여러 지표로도 드러난다.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나라로 성장했지만, 사람들은 무척 지쳐 보인다. 한국의 근로시간은 2021년 기준 연간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5위다. 삶에 대한 만족도도 낮다. 최근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간한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인의 행복도는 10점 만점에 5.9점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 34위였다. 자살률은 몇 년째 OECD 국가 1위다. 지난해 서울 합계출산율은 0.59명에 불과했다. 세계를 휩쓰는 K열풍의 어두운 그림자다.
그렇다면 K는 정말 상처투성이 훈장일 뿐일까. 1994년생 RM이 이 질문에 내놓은 답은 인상적이다. 그는 일단 K는 ‘조상들이 싸워 쟁취한 품질 보증서(프리미엄 라벨)’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서양인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침략당하고 둘로 나누어졌고 70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나라다. 이런 나라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정말로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이건 뭔가를 해내는 방법이고 K팝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부다. 부작용도 있지만, 매우 빠르고 강하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부작용이 있다”고 했다.
우문현답이라며 갈채를 받은 이 대답은 또 한 번의 씁쓸한 행복 성적표를 받아든 시점에서 되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세간의 평처럼 ‘한국을 멋대로 평가한 해외 언론에 한 방 먹인 대답’이어서가 아니다. 그보단 여전히 ‘불행한 한국’이란 덫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가 함께 되새기면 좋을 격려가 아닐까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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