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설의 근거가 되는 ‘풍수(風水)’라는 말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이다. 직역하면 감출 장(藏)에 바람 풍(風), 바람은 감추고 물을 얻는 곳을 가리킨다.
겨울 한파를 몰고 오는 북서풍은 막아주면서 농사지을 물은 풍부하게 얻을 수 있는 곳, 의역을 하면 바람이 잦고 물이 풍부한 곳이 사람 살기 좋은 곳이란 의미다. 예부터 바람을 막기 위해 동네 앞이나 바닷가에 방풍림(防風林)을 조성한 걸 보면 조상들이 바람을 얼마나 건강에 해로운 요소로 인식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방에서도 ‘바람(風)’은 반드시 막고 이겨내야 할 병증의 하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풍(中風)이 그 대표적이다. 바람이 어떻게 병인이 되어 질병을 유발하는지는 중국의 의학서 ‘황제내경’ 태소에 잘 기록되어 있다. ‘바람은 원래 기(氣)와 하나인데 천천히 질서가 있을 때는 기(氣)가 되지만 빠르고 다급하면 풍(風)이 된다.’
이때 기는 크게 자연에서의 대기(大氣)와 인체 내부에 흐르는 원기(元氣)로 해석할 수 있다. 대기나 원기 모두 여유와 질서가 있을 때는 에너지로 작용하지만 빠르고 급해지면 자연에서는 태풍이 되고, 인체에서는 뇌혈관 질환인 중풍이나 와사풍, 고혈압, 이명, 어지럼증 같은 질환을 일으킨다.
풍문 예풍 풍지 등 바람을 막기 위한 우리 몸의 경혈이 머리 뒤편에 몰려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옛 어른들이 머리 뒤편에 벙거지를 쓰고 목을 보호했던 이유도 풍문과 풍지혈을 보호해 중풍이나 감기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한의학의 개념에서는 감기도 풍증(風症)에 속한다. 어린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 방풍과 황기가 든 옥병풍산을 사용했는데, 이는 병풍처럼 단단하게 성을 쌓아 바이러스 침입에 대항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방풍(防風)은 예부터 바람을 막아주는 대표 약물로 쓰였다. 방풍은 약재로도 쓰였지만 나물로도 주목받았다. 방풍에는 진방풍, 해방풍, 식방풍의 세 종류가 있는데 약으로 쓰는 진방풍은 원방풍이라고 해서 한방의 대표 약물 중 하나고, 해방풍은 갯방풍이라고도 불리며 사삼(沙蔘)을 닮은 약재다. 식방풍은 갯기름나물로 방풍나물과에 속하고 전호라는 약물에 가깝다. 감기 증상을 해소하고 기침을 없애며 호흡기의 점막을 튼튼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데 한마디로 풍을 치료하는 방풍과는 거리가 멀다.
영조 15년 2월 승정원일기에는 해방풍을 몰래 캐 가는 중국인들에게 격분한 신하의 보고 내용이 나온다. 조선 방풍의 질이 고려인삼만큼 좋았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 인조 24년의 기록에는 방풍의 효험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는데 방풍이 들어가는 처방 중 방풍통성산(防風通聖散)이 인조의 감기 후유증을 진정시키는 데 큰 효험을 발휘했다는 내용이다. “삼가 열이 나는 증후와 귓속의 이명이 모두 덜한 듯하다는 하교를 받들고서, 신들은 지극히 기쁘고 경하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방풍나물이 약재로 쓰이는 방풍과 다르다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방풍나물이 속한 전호는 기관지의 가래나 이물질을 없애주고 호흡기의 점막을 튼튼하게 강화하는 건강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봄철 황사와 알레르기질환이 유행하는 이즈음, 방풍나물로 식탁을 꾸며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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