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시작된 은행 위기의 공포가 스위스를 거쳐 독일 최대 투자은행인 도이체방크까지 덮쳤다. 24일 장중 한때 14% 넘게 떨어졌던 주가는 어제 장 초반 반등세로 돌아섰지만 불안감은 남아 있다. 특별한 부실 징후가 없는 대형 은행까지 표적이 된 것은 그만큼 투자자들의 공포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은행 위기 공포가 전염병처럼 번진다는 뜻에서 ‘뱅크데믹’(은행과 팬데믹의 합성어)이란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다.
도이체방크 주가가 출렁인 데는 은행에 문제가 있다기보단 불안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순수익이 50억 유로(약 7조 원)에 이르고 유동성도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크레디트스위스(CS)가 UBS에 전격 인수되면서 신종자본증권인 코코본드가 휴지조각이 되자, 코코본드 비중이 높은 도이체방크로 불신의 불똥이 튀었다. 헤지펀드들이 시장 불안 심리를 이용해 은행주 하락에 집중 베팅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번 글로벌 은행 위기는 여러 면에서 과거와 양상이 다르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주로 투자한 자산은 안전자산의 대명사인 미국 국채였다. 도이체방크는 재무 건전성이 탄탄한데도 시장을 안심시키지 못했다. 이번 위기 앞에선 절대적인 안전지대가 없는 셈이다. ‘디지털 뱅크런’에서 보듯 공포의 확산 속도 역시 빠르다. 40년 역사의 SVB가 무너지는 데는 이틀, 167년 전통의 CS가 몰락하는 데는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뱅크데믹 전염 가능성에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 국내 은행권에서 발행한 코코본드 잔액은 31조5000억 원에 이른다. 당장 영향은 작다지만 투자 심리가 불안해질 경우 자본 확충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가뜩이나 한국 금융 시스템엔 지뢰밭이 널려 있는 상태다. 비(非)은행권을 중심으로 급증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가계부채도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자산을 모두 처분해도 빚을 갚기 어려운 고위험 가구가 1년 새 갑절로 늘어 61만5000가구를 넘어섰다.
최근의 위기는 공포의 확산, 예측 불가능성, 빠른 전파 속도 등 여러 가지에서 전염병과 많이 닮았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잠재된 위기가 현실화할지 알 수 없다. 금융권의 건전성을 강화하고, 시장이 과도한 불안에 휘둘리지 않도록 위기 징후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촘촘한 금융 방역망의 선제적 구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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