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성 강한 쇼트폼의 세계[2030세상/김소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8일 03시 00분


김소라 요기요 마케터
김소라 요기요 마케터
“59초로 맞춰주세요.”

지난주 일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유튜브 ‘쇼츠(Shorts·짧은 영상)’ 카테고리에 등록하려면 59초를 넘겨서는 안 된다. 마케팅 일을 하다 보니 유행하는 콘텐츠 형식을 즉각 반영하는데, 요즘은 1분 이내의 ‘쇼트폼(short form)’ 영상을 자주 만든다. 나는 여가에 영상을 잘 보지 않는데도 쇼트폼 영상은 넋을 놓고 보곤 한다. 중독성을 몸소 체험하니 쇼트폼의 인기도 이해가 간다.

“쇼트폼 영상은 짧으니까 만들기 쉽지 않나요?”

사람들이 쇼트폼에 대해 흔히 하는 말이다. 어제 회의에서도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촬영이나 편집에 드는 시간이 짧을 뿐, 쇼트폼의 기획 난이도는 일반적인 영상과 차이가 별로 없다. 1분은 애매한 시간이다. 노래 한 곡도 다 들을 수 없는 시간이니 본격적인 내용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내용을 빼버리면 맥락이 없어 지루하다. 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

쇼트폼에는 시청자가 주제와 내용을 알아줄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그러니 빨리 말하며 시작해야 한다. 쇼트폼 영상에 ‘호불호 갈리는 녹차 아이스크림’, ‘화나서 급발진하는 민수’ 같은 제목이 쓰여 있는 이유다. 내용 전달도 직접적이다. 이야기에 기승전결이 있다면 자막이나 내레이션 해설이 붙는다. 말없이 은근히 전하는 감정 같은 게 쇼트폼의 세계에는 없다.

그 대신 쇼트폼에는 자극이 있다. 보통 온라인 영상은 보고 싶은 걸 고르고, 다 보고, 보고 나면 버튼을 눌러 빠져나온다. 쇼트폼은 모바일 디바이스를 잡은 채 엄지손가락으로 밀기만 하면 다음 영상으로 넘어간다. 중독적인 음악, 반복 효과음, 신기한 효과, 눈에 띄는 등장인물…. 쇼트폼의 모든 장치는 사람들의 엄지손가락을 붙잡으려는 용도다. 자극적인 걸 보다 보면 1분쯤은 금방 지난다. ‘다음 자극, 또 다음 자극’ 같은 식으로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간이 흐른다.

쇼트폼 영상은 규격 자체가 다르다. 보통 영상과 달리 쇼트폼은 세로가 기본이라 9:16 비율이 일반적이다. 모바일 시청 환경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꾸 생략할 게 많아진다. 배경이 생략된다. 과정도 생략된다. 쇼트폼 영상에서 사과를 자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딱 세 컷이 필요하다. 칼을 든 장면, 칼이 사과에 닿는 순간, 사과가 모두 잘려 있는 모습을 1초씩 보여주면 된다. 다른 방법은 없다. 보통 제한은 창의성의 원천이 되지만 공간과 시간이 모두 제한된 쇼트폼 세계에서 창의성은 기묘하게 제한된다.

쇼트폼은 빠르게 증식하고 있다. 쇼트폼 영상의 본격적인 보급 시점은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21세기의 새로운 미디어들이 그랬듯 쇼트폼 영상의 수요와 공급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배경과 과정이 잘린 채 자극만 남은 영상, 내가 찾아내기 전에 주제를 알려주는 콘텐츠만 남는다면 사람들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영상을 보는 방식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역시 쇼트폼 세계의 일부다. 멈출 수 없다. 이번 주에만 쇼트폼 영상 마감이 두 건 남았다.

#쇼트폼#중독성#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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