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던지는 중앙부처 공무원 1년에 3000명 [횡설수설/이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8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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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국가의 산업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국뽕’에 취해 살았던 시절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근무하는 20년 차 공무원 A 씨는 초임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정책 프로젝트가 떨어지면 밥 먹듯이 야근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나라 살림살이부터 일자리, 복지, 안보 등 부처별로 대한민국을 끌고 간다는 긍지와 사명감이 각 부처 공무원들에겐 넘쳤다.

▷요즘 관가 분위기는 달라졌다. 18개 중앙부처 소속 일반직 공무원 중 사표를 던지는 이가 한 해 3000명에 육박한다. 인사혁신처와 국회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일을 그만둔 공무원이 2995명으로 2017년에 비해 57% 늘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법무부, 고용노동부 순으로 많았다. 과기정통부는 산하 우정사업본부의 우정직, 법무부는 교정직 공무원들이 그만둔 사례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외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사표 행렬도 부쩍 늘고 있는 추세다.

▷중앙부처의 허리급이라고 할 수 있는 과장급 이상의 탈(脫)공직이 특히 눈에 띈다. 국토교통부는 2021년 한 해에만 3급과 4급 공무원 26명이, 산업통상자원부는 21명이 사표를 쓰고 기업, 연구소 등으로 옮겼다. 민간 분야의 인력 수요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기회를 붙잡자’는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한다. 공직이 과거만큼 안정적이지 않고 보상 등 유인책도 떨어진다며 공무원들은 한숨이다. 고위공무원단으로 승진해 봤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 인사’에 휘둘리거나 인사 유탄을 맞을 것이란 불안감도 적지 않다.

▷스스로 떠나는 공무원들 앞에서 ‘철밥통’은 옛말이다. MZ세대를 비롯한 청년 공무원들의 조기 퇴직도 두드러진다. 연공서열을 비롯한 구시대적 조직문화와 낮은 처우, 미래에 대한 회의감과 비전 부재 등 문제들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탓이다. 외무직 공무원 중에서는 시험에 수석 합격했던 30대 외교관이 구글로 가겠다며 돌연 사표를 냈다. “시험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면서도 이에 매달리지는 않는 게 요즘 젊은이들이다. 공무원시험 응시율도 계속 떨어져 9급 공무원 경쟁률은 31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공직사회의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해외에서는 인공지능(AI) 도입, 자동화 등을 통한 시스템 효율화 작업을 시도하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딜로이트컨설팅은 공무에 AI 기술을 도입할 경우 미국에서만 연간 업무시간은 12억 시간, 예산은 411억 달러 아낄 수 있다는 계산을 내놓기도 했다.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는 게 국민을 위하는 공복(公僕)들의 헌신과 피땀이다. 이런 인재 양성에 많은 국가 예산과 노력이 투입된다. 한 명씩 떠날 때마다 국가적 손실이 쌓여간다.

#중앙부처 공무원#사표#1년에 3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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