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갭투자’ 하다 ‘갭거지’ 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9일 21시 30분


“1000만 원만 있어도 아파트 산다.” 집값이 한창 오르던 시절 이런 솔깃한 말들이 책과 유튜브,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퍼져 나갔다. 집값 떨어지기만 기다리지 말고 당장 투자해라. 돈 없어도 걱정 마라. 전세 끼고 남의 돈으로 사면 된다. 그래도 부족하면 금리 낮으니 대출받아라. 대출은 은행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거다. 집값과 전세금의 차액만으로 집 한 채, 전세금 오르면 그 돈 활용해 또 한 채…. 소액으로 시작해 부동산 부자를 만든다는 마법의 단어 ‘갭투자’ 성공담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집값과 전세금이 동시에 떨어지면서 갭투자는 재앙으로 돌아오고 있다. 집값 상승기에 ‘벼락 거지’를 면하겠다고 갭투자에 나섰던 사람들이 오히려 ‘갭거지’가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2020년 임대차 3법 이후 전세금이 크게 올랐을 때 달려든 사람들, 특히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20, 30대 영끌족의 타격이 크다. 금융자산, 대출에 더해 집까지 팔아야 겨우 전세금을 돌려줄 수 있는 임대인은 최대 21만3000가구, 집을 팔아도 반환이 어려운 임대인은 최대 1만3000가구에 이를 것으로 국토연구원은 추정한다.

▷갭투자는 집값과 전세금은 항상 오른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집값과 전세금 둘 중 적어도 하나만 오르면 된다.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다 해도 집값이 오르면 집을 팔아 차익을 실현하면 된다. 집값이 떨어져도 전세금만 받쳐 주면 버틸 수 있다. 전세금은 이자 한 푼 안 내는 무이자 대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매가와 전세가가 함께 추락할 수도 있다는 게 갭투자족의 계산 착오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아파트 매매 및 전세가격지수는 지난해 2월부터 줄곧 동반 하락세다. 지난달엔 전국 아파트값이 1.62%, 전세금은 2.62% 떨어졌다.

▷무리한 대출에 따른 고통은 안타깝지만 투자자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하지만 전세 끼고 집을 산 갭투자의 실패는 본인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전세는 뒤에 들어올 세입자에게서 돈을 받아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주는 구조다. 전세금 하락으로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집주인이 상환할 능력도 없으면 일종의 ‘폰지 사기’가 된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의 고통은 어떻게 보상하나.

▷집값 하락으로 갭투자에 대한 경고음이 커진 요즘에도 집값 상승에 베팅하며 무리한 갭투자에 나서는 이들이 있다. 집값보다 전세금이 더 높은 ‘마이너스 갭투자’ 사례까지 나타난다. 그들은 역발상의 똑똑한 투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세 만기 때까지 가격 반등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깡통전세’의 후폭풍을 피할 수 없다. 갭투자는 자칫 쪽박 찰 수 있는 위험천만한 투기이자,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기가 될 수도 있다.

#갭투자#갭거지#무리한 대출#집값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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