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넘겨받은 日, 독도 왜곡으로 뒤통수[광화문에서/신진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30일 21시 30분


신진우 정치부 차장
신진우 정치부 차장
“공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이달 초 정부 핵심 당국자가 기자를 만나 귀띔한 얘기다. 당시 한일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을 두고 막바지 협상을 벌일 때였다. 그는 일본 측에 제3자 변제안을 중심으로 한, 사실상 최종안까지 제안했다면서 이제 일본이 답할 차례라고 수차례 말했다. 우리가 먼저 해법을 제시하면 이달 중에라도 일본이 어느 정도 성의 있는 호응 조치에 나서줄 것으로 그는 기대했다.

4주가 흘렀다. 그 사이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런데도 ‘공이 일본에 넘어간 상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부 다른 고위 당국자는 27일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공은 일본 쪽에 있다.”

아직도 공이 일본에 있다는 건 사실 일본 정부가 우리 기대에 여전히 부응하지 못하고 있단 얘기다. 윤 대통령 방일 당시 기시다 총리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고 했지만 직접적으로 ‘사죄’ ‘반성’ 등을 언급하진 않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는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만들었지만 강제징용 배상 책임이 있는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이 이 기금에 직접 참여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기금 시작 액수도 한일 양측이 각각 10억 원으로 터무니없이 적다.

일본이 사과든 배상이든 우리 기대를 충족시키진 못했지만 사실 정부 내에서 초조해하는 기류까진 감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매를 먼저 맞은 게 나을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일본이 앞으로 조금씩이라도 진정성 있는 조치를 밟아가면 국내 여론이 조금씩 돌아올 거란 희망 섞인 낙관론이다. 4월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5월 한미일 정상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만나면 일본이 미국 눈치를 봐서라도 어차피 우리 손을 잡을 거란 기대도 있었다.

이렇게 안주할 때 악재가 터졌다. 일본이 조선인 징병 대목을 삭제하고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왜곡된 사실을 기술한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을 확정했다. 한국 외교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했지만 그는 오히려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현)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도, 국제법상으로도 분명한 일본 고유 영토”라고 주장했다. 앞으로도 문제다. 크고 작은 폭탄이 널려 있다. 일본은 외교청서 발간,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및 공물 봉납 등을 계기로 과거사 퇴행적 행태를 통해 우리 뒤통수를 언제든 후려칠지 모른다.

모든 일엔 타이밍이 있다. 특히 민감한 한일 관계에선 ‘어떻게’보다 ‘언제’가 중요할 때가 많다. 기시다 총리가 올해 ‘언젠가’ 방한해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만나는 장면만 상상하거나 일본 기업들이 ‘언젠가’ 배상에 참여해 주길 기다리는 건 정부의 직무유기다. 일본에 관계 개선 찬물을 끼얹는 행동을 중단하고 우리 해법에 화답하는 조치를 내놓으라고 압박해야 한다. 일본 정부도 명심해야 한다. 너무 늦은 조치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본#독도 왜곡#뒤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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