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금은방에서 1g짜리 순금 돌반지를 팔기 시작한 건 2011년 6월부터다. 찾는 손님이 많아서라기보다 정부와 귀금속 업계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정부는 일제 잔재인 ‘돈’ 대신 국제 표준인 ‘그램(g)’을 정착시키고자 했고, 업계는 치솟는 금값 때문에 손님이 뚝 끊긴 돌반지 시장을 살리고 싶었다. 그해 동일본 대지진, 유럽 재정위기,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같은 온갖 악재가 겹치면서 국제 금값은 역사적 고점을 찍었다. 국내에서도 순금 한 돈(3.75g)이 25만 원을 뚫었다.
▷정부가 당시 소비자물가지수 대상에서 금반지를 제외하자 물가 상승률이 0.2%포인트나 낮아질 정도였다. 물가를 마사지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결국 금반지는 물가 산정 품목에서 빠졌다. 그렇게 1g 반지 제작용 금형이 전국에 보급됐고, 겉모습은 한 돈짜리와 똑같지만 두께는 얇은 6만 원대 돌반지가 등장했다. 그래도 1g 반지는 낯간지럽다며 현금 봉투를 준비하는 사람이 많았다.
▷정부와 업계의 노력에도 시큰둥했던 1g짜리 돌반지의 인기가 요즘 뜨겁다. 10만 원이 든 현금 봉투보다 1g 금반지가 훨씬 더 비싸졌기 때문이다. 10만 원 봉투는 부담되고 5만 원은 약소하다며 0.5g짜리 돌반지를 선물하는 젊은층도 많아졌다. 2011년의 고점 이후 오랜 세월 암흑기를 거쳤던 금값이 다시 천정부지로 뛰면서 나타난 변화다. 세공비를 더하면 요새 금반지 한 돈은 40만 원이 넘는다.
▷금은 ‘불안 심리’를 먹고 산다. 팬데믹 위기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거쳐 최근 미국, 유럽발(發) 은행 위기까지 불거지면서 금 가격은 사상 최고가를 새로 쓰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지정학적, 경제적 불안이 일상화되자 그야말로 신(新)골드러시가 펼쳐진 모습이다. 이에 힘입어 세계 중앙은행들도 공격적으로 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국내 편의점에는 최대 열 돈짜리 골드바를 구입할 수 있는 ‘금 자판기’까지 등장했는데 인기가 많아 돌반지, 금 모양 카네이션 등 판매 상품을 늘린다고 한다.
▷고공비행하는 금값에 장롱에서 잠자던 금붙이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요즘 서울 종로3가 귀금속 거리에는 금을 사는 손님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고,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하루 10건 안팎의 돌반지 판매 글이 올라온다. 금니를 팔기 위해 폐금업체를 찾는 사람도 늘었다. 한 돈 금반지를 팔면 당장 30만 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으니 고물가, 고금리로 한 푼이 아쉬운 서민들에겐 적지 않은 돈이다. 불황이 불러온 역(逆)골드러시라 할 만하다. 치솟는 금값을 보는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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