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70년을 맞아 동아일보가 국가보훈처와 함께 한미 양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창간 103주년 여론조사에서 두 나라 국민 모두 주한미군 주둔과 한미 연합훈련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반도체과학법 같은 ‘미국 우선주의’ 입법에 대해서는 한미 국민 간에 적지 않은 인식차를 보였다. 대미 교역과 투자 등 한국 경제와 직결된 경제안보 현안에 대한 양국 간 인식의 간극을 줄이는 노력이 절실해졌다.
이번 조사 결과는 한미 국민들이 안보동맹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미국인 응답자의 66%가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했고, 나아가 71%가 연합훈련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상대국에서 전쟁이 나면 군대를 파병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미국인의 파병 찬성 비율이 반대보다 높게 나왔다. 어느 나라에도 일방적 의존이나 부담이 아니라 안보 이익을 공유한다는 상호 인식은 동맹 결속의 핵심 토대다.
한국의 자체 핵 보유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핵 공유에 대해서도 미국인의 찬성 여론이 반대보다 높게 나타난 것은 다소 의외다. 미국 행정부가 어떤 형태의 한국 핵무장에도 거부감을 보이지만 미국인의 인식은 달랐다. 그만큼 북핵 위협에 대한 공포감이 크다는 반증이지만 그것이 ‘한반도의 문제’로 끝나길 바라는 미국 사회 저변의 인식을 엿보게 한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 수준에 대한 한미 국민 간 엇갈린 반응도 동맹의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경제 분야에서 한미 간 인식의 간격은 앞으로 양국 동맹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숙제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 미국의 반도체법·인플레이션감축법 추진과 관련해 ‘동맹국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80% 넘는 한국인이 동의했지만 미국인은 그 절반 정도에 그쳤다. 한미동맹이 자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긍정적’이라는 응답도 한국인 76.7%, 미국인 41.4%로 차이를 보였다. 동맹의 가치나 효용보다 경제적 이익을 중시하는 미국인의 기류를 보여준다.
한미동맹은 존망의 위기에서 한국을 구한 미국의 막강한 힘에서 시작됐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비롯한 국력의 차이는 여전하다. 하지만 한국도 이제 세계 10위 안팎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당당히 갖췄다. 한미 양국은 힘의 격차가 뚜렷한 비대칭 동맹으로 출발했지만 이제 안보와 경제의 동반자로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대등한 동맹으로 발전해야 한다. 한국의 더 큰 역할, 특히 우리 기업의 활약이 더욱 매력적인 동맹의 미래를 이끌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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