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국가에 대한 공격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형사 기소 결정이 나오자 소셜미디어와 성명을 통해 분노를 쏟아냈다. “극좌파 괴물과 폭력배들이 유력 대선 주자에게 사상 초유의 공격을 감행했다”며 미국이 정치적 박해를 일삼는 제3세계 권위주의 후진국처럼 됐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기소 뉴스에 충격을 받았지만 곧이어 “싸울 준비가 됐다”며 방어 총력전에 들어간 상태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계속 오르는 중이다. 폭스뉴스 조사에 따르면 그는 기소 직전 공화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2위와의 격차를 한 달 전의 두 배로 벌렸다. 그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54%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 주지사(24%)를 30%포인트 따돌렸다. 기소 당일에는 하루 만에 400만 달러(약 52억 원)의 후원금을 모금했다. “금액은 상관없으니 마녀사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2024년 백악관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트럼프 명의의 이메일이 뿌려진 뒤였다. 여전히 건재한 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결과다.
▷트럼프 측에서는 기소 결정이 오히려 “정치적 황금”이라는 말도 나온다. 대선에 최대한 활용하자는 전략이 공공연하게 거론된다. 정치 탄압에 맞서는 ‘투사’이자 ‘순교자’ 이미지를 극대화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머그샷(범인 식별용 사진)을 공개하지 않고, 수갑을 채우지 않기로 한 검찰의 결정은 상징적 장면을 연출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막겠다는 의도 또한 작용했을 것이다. 기소 국면을 내년 말까지 끌고 가기 위해 변호인단이 재판 지연 작전을 반복할 것이라는 관측도 파다하다.
▷트럼프 기소를 주도한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검장은 집중 공격의 타깃이 됐다. 살해 협박 편지와 백색가루 봉투가 배달됐다. 그가 진보 진영의 큰손 후원자인 조지 소로스로부터 검은돈을 받았다는 식의 음모론도 난무한다. 트럼프 본인이 브래그 검사장을 ‘타락한 사이코패스’로 부르며 “기소 시 죽음과 파멸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래그 검사장은 “근거 없는 선동적 공격이자 부당한 수사 개입”이라고 맞서고 있다. 친(親)트럼프 대 반(反)트럼프의 충돌 가능성으로 미국 사회는 일촉즉발 분위기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 처벌을 자제해온 미국의 금기는 깨졌다. 정치적 보복의 악순환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기소 결정은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뉴욕타임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소 사례를 프랑스, 이탈리아 등과 함께 소환하며 “가장 앞선 민주주의 국가들도 전직 대통령 기소를 피해 가지 않았다”고 했다. 첫 전직 대통령 기소가 야기할 혼란과 분열을 얼마나 빨리, 어떻게 극복할지가 미국 민주주의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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