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고과를 낮게 줬더니 대놓고 일하기 싫은 티를 내네요. 연봉이 적다고 이직을 입에 달고 사는 모양인데 실제 퇴사는 안 하고…괴롭습니다.”
“목소리 큰 이 친구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탓에 사무실에서 ‘왕따’가 되고 있어요. 회의 때도 팔짱 끼고 앉아 제 제안은 무조건 반대하는데 이젠 출근이 두려울 정도입니다.”
최근 국내 최대 팀장 커뮤니티 ‘팀장클럽’과 관리자급 대상의 기업 교육에서 ‘역가스라이팅’ 관련 사연이 부쩍 늘었다.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례와는 반대로 은밀하게 괴롭히는 후배 탓에 오히려 상사나 선배가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 사례들이다.
조직 내 소통과 포용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부하 직원발(發) 직장 내 괴롭힘’은 여전히 그림자의 영역에 있다.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가하는 ‘갑질’이 빈도나 정도에서 더 심각한 이슈인 탓에 사내 교육에서도 주로 선배나 상사의 덕목만 강조하기 때문이다.
부하 직원이 상사를 괴롭히는 ‘상향식 괴롭힘(upward bullying)’은 해외에서도 점점 더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 ‘직장 내 괴롭힘 연구소(WBI)’에 따르면 상향식 괴롭힘은 미국 기업 전체 괴롭힘 사례의 14%를 차지하며 공식 통계로도 집계되고 있다.
괴롭힘을 당하는 관리자들은 우울증, 불안, 건강 악화 등의 정신적, 신체적 피해는 물론이고 평판 저하, 직위 강등, 퇴사에 이르기까지 직무적 피해도 받고 있다고 호소한다. 조직 관리 관점에서 상향식 괴롭힘을 개인 리더십의 문제로만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다.
조직문화 전문 컨설팅업체 나발렌트의 론 카루치 공동 설립자 등 연구진이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최근 기고한 글에 따르면 상향식 괴롭힘은 대개 ‘정보 은폐하기’ 등 미묘한 가스라이팅에서부터 시작된다. 이후 헛소문을 퍼뜨리고 따돌리며 불복종하는 단계로 진행되는 것이 전형적이다.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연구진의 조언을 유심히 들을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대처 요령은 ‘부끄러워하지 말고 문제를 공식화할 것’이다. 인사팀이나 상사 등을 통해 피해 사실을 알리고 중재 요청을 할 필요가 있다. 무례함이 이미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면 가해 직원을 ‘개과천선’시키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또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피해 사실을 자세히 글로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다. 이것이 향후 증거가 될 수 있고, 괴롭힘의 원인이나 패턴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조직 차원의 슬기로운 대처도 중요하다고 필자들은 강조한다. 예컨대 한 임원에게 몇 단계 아래 직급의 직원들이 자신의 직속 팀장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며 찾아왔을 때 ‘여론’을 의식해 무조건 발언자들에게 동조해선 안 된다.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겠다고 중립적으로 답하고, 편견 없이 상황을 중재할 전문 코치나 인사팀을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상향식 괴롭힘은 그 희생양이 주로 윗사람들에게 신임을 덜 받고 있거나 회사의 ‘권력 표준’에서 벗어난 상사들을 타깃으로 한다는 점에서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학교 폭력과도 다를 바 없다. ‘갑질 상사’만큼이나 유해한 ‘갑질 부하’의 유해성을 살피고, 늦기 전에 이를 적절히 제어하는 조직 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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