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시 ‘N수생’ 천하… 국가경쟁력 갉아먹는 인재 쏠림[횡설수설/서정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3일 21시 30분


46세 22학번인 지방대 의대생. 이 늦깎이 학생의 사연이 얼마 전 유튜브 등에서 화제가 됐다. 서울 명문대 97학번인 그는 17년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3수 끝에 의대에 합격했다. 마흔 넘어 얻은 늦둥이 딸을 위해 ‘정년 없는 전문직’이 필요하다고 여겨 의대를 선택했다고 했다. 최근 의대엔 번듯한 직장을 포기한 ‘유턴족’을 비롯해 재수 이상의 N수생이 늘어나 고령화되고 있다.

▷교육정책연구단체인 ‘교육랩공공장’ 조사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전국 의대 정시 합격자 4명 중 3명은 N수생이었다. 전체 5000여 명 중 N수생이 77.5%나 됐다. 지난해 서울 소재 대학의 N수생 비율이 34.5%인 것과 비교하면 2배 넘게 차이 난다. 유독 의대에 N수생이 쏠리는 건 늦깎이 학생의 기대처럼 ‘정년 없고 연봉이 높다’는 것 때문이다. N수로 몇 년 늦게 출발해도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다.

▷N수생은 주로 어디서 올까. 입시업계에선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이공계와 KAIST 등 4개 과학기술원 학생들이 N수생의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본다. 수시를 위해 내신을 신경 써야 하는 고3과 달리 이들은 정시 과목에만 집중할 수 있어 수능 고득점에 유리하다. 여기에 지방 의대에서 서울 지역 의대로 갈아타려는 수요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이 옮기고 간 빈자리로 인해 이공계 학과나 지방 의대들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거나 다시 편입생을 뽑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한다.

▷의대 N수생에 밀린 고3 재학생들은 원치 않은 이공계로 가거나 대학 간판을 따기 위해 문과 침공을 감행한다. 이들에게 밀린 문과 지망생들은 재수생이 되기 십상이다. 꼬리에 꼬리를 문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과학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영재고와 과학고의 우수 재학생들은 그동안 받았던 지원금까지 반납하면서 의대로 진로를 바꾼다. ‘공부 잘하면 의대’라는 사회적 인식 속에서 ‘의대를 정점으로 한 학력 줄 세우기’의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의대 지망생은 화수분처럼 늘지만 소아과 흉부외과 등 필수 진료 의사는 태부족이다. 한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사는 모르는 것도 죄가 되는 직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만큼 사명감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단지 공부 잘한다는 이유로, ‘정년 없고 높은 연봉의 전문직’ 지위를 얻겠다는 목표만으로 너도나도 의대 문을 두드리는 현실이 씁쓸하다. 전국 대학 의대 정원은 약 3000명. 수능 응시생 중에서 상위 1% 내의 인재들이 간다. 이런 최고급 두뇌들을 병원 말고도 반도체, 인공지능, 로봇, 우주항공 등 첨단 분야 연구실에서도 골고루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게 개인도, 국가도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이기에….

#의대 정시#n수생#인재 쏠림
  • 좋아요
    9
  • 슬퍼요
    4
  • 화나요
    6

댓글 9

추천 많은 댓글

  • 2023-04-04 05:20:27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절, 이공계 쏠림이 있었습니다. 두 분 대통령께서는 그 이공계 쏠림을 긍정적으로 이용하여 미래의 먹거리를 개발하여 오늘의 반도체, 조선, 기계, 자동차 공업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의대 쏠림을 악의적인 선동에 이용하지 말고, 마찬가지로 미래의 먹거리를 개발하는데 일부를 돌리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바이오 "는 분명 미래 먹거리 중의 하나가 될 후보 중의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의대 교수와 의대 연구직에 의사들이 많이 진출하도록 유도하고 이들의 진료 부담을 줄여서 관련 연구에 더욱 전념하도록 투자해야 합니다

  • 2023-04-04 01:35:27

    인재가 쏠려서 좋은 점도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의사들에게 어떤 선진국보다 헐 값에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영국의 멍청한 의사들보다 100배는 영리하고 신속하고 저렴하며 유능하다

  • 2023-04-04 05:46:22

    의대 쏠림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이오 분야의 미래 먹거리 투자에 이용해야 합니다. 의과대학 교수들의 연구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의과대학 교수들의 진료 부담을 선진국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줄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과 대학 교수들 숫자를 적어도 3배 이상으로 늘리면, 이로서 진료/연구의 균형으로 바이로 연구가 가능합니다. 보험 수가로 제한된 대학병원 예산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니 바이오 분야의 먹거리화를 위한 투자의 일환으로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늘리면 응급 상황을 지원할 인력도 확보됩니다.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9
  • 슬퍼요
    4
  • 화나요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