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무역수지가 13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1분기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2.6% 줄어든 1515억1200만 달러로 수입액(1740억5200만 달러)을 넘어서지 못했다. 무역수지가 1년 넘게 적자를 낸 것은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수출 부진에 더해 내수와 정부지출에도 속속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3대 성장엔진이 모두 식어가고 있는 것이다.
무역수지는 에너지 수요 감소 등으로 수입액이 줄어드는데도 좀처럼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수출액이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무역적자는 3개월 만에 벌써 지난해 전체 규모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고금리, 대중 수출 부진 등 대외적 경영환경 악화 속에 주력 업종인 반도체 혹한이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이번 주부터 발표가 시작되는 기업들의 1분기 실적 전망은 암울하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같은 주요 기업들마저 ‘어닝 쇼크’ 성적표를 받아들 것이란 게 업계 예상이다.
소비와 투자 등 내수도 부진하다. SK하이닉스와 한화솔루션이 잇따라 투자계획을 철회하거나 규모를 줄이는 등 기업들의 투자절벽이 현실화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OPEC+ 국가들이 하루 최대 116만 배럴에 이르는 원유의 추가 감산에 나서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다시 커졌다. 부동산 시장과 증시, 고용시장까지 동시다발로 얼어붙는 판에 정부지출마저 막히고 있는 것도 문제다. 연말까지 2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급속한 세수 감소는 정부의 경기대응 여력을 그만큼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이대로는 하반기 경제성장률 하락은 물론이고 구조적 장기침체를 피할 수 없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하반기 경제 전망을 1.5%로 낮추는 등 ‘상저하저(上低下低)’를 예고하는 수치들이 이미 나오기 시작했다. “제조업 기반 수출국의 공통적 현상”이라고 위안하면서 막연히 ‘중국 리오프닝’ 효과를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 위기의 요인이 워낙 광범위하지만, 금융시장 불안 등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민관이 힘을 합쳐 기술개발과 혁신으로 성장엔진을 되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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