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왜곡된 수가·먹통 핫라인 해결해야 ‘응급실 표류’ 막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4일 00시 00분


지난달 15일 임용철 아주대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뇌혈관에 문제가 생긴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임용철 교수는 아주대병원 내에서 두개골을 열어 환자를 치료하는 ‘응급 개두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다. 사진=히어로콘텐츠팀
지난달 15일 임용철 아주대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뇌혈관에 문제가 생긴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임용철 교수는 아주대병원 내에서 두개골을 열어 환자를 치료하는 ‘응급 개두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다. 사진=히어로콘텐츠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킨 세 살배기가 병원 11곳을 돌다가 의사 얼굴도 못 보고 숨졌다. 지게차에 깔려 다리가 부러진 30대 남성은 6시간 넘게 응급실을 떠돌다가 골든타임을 놓쳐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구급차와 응급실에서 37일을 보내며 밀착 취재한 환자 26명의 응급실 표류기는 의료 강국 한국의 무너지는 응급의료 체계를 아프게 보여준다. 많은 독자들이 “응급실 찾아 표류, 나도 겪었다” “아이가 응급실 갈 일이 생길까 겁난다”며 공감을 보냈다.

한국은 의술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병상 수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응급실 병상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수술할 의사가 없어서다. 절대 의사 수도 부족하지만 기계로 하는 검사는 비싸게, 환자 살려내는 의사의 손기술엔 헐값을 매기는 왜곡된 의료수가 탓이 크다. 머리를 열어야 하는 개두술은 최소 6명의 의료진이 3시간 넘게 매달려야 하는데 환자 1명당 병원이 받는 돈은 274만 원 정도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신경외과 전공의 1년 차 111명의 12년 후 진로를 추적했더니 수술실을 지키는 의사는 10명뿐이었다. 불필요한 검사와 경증 치료에 쓰이는 건강보험 재정을 응급 수술에 투입해야 하지만 정책 수혜자를 줄이는 일이어서 정부도 국회도 나서지 않는다.

의사와 환자를 이어줄 시스템도 고장 난 상태다. 119구급차에 탄 환자의 신속한 응급실 이송 대책은 정보 공유를 꺼리는 보건복지부와 소방청의 칸막이 행정에, 어렵게 구축한 병원 간 응급 환자 정보 공유 플랫폼은 국회의 입법 지연에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결국 119구급대원들도 의사들도 환자를 받아 줄 병원을 찾느라 수십 번씩 일일이 전화를 돌리고 있다.

정부는 응급실 찾다가 거리에서 죽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응급의료 대책을 내놓지만 그때뿐이다. 지난달 발표한 ‘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 핵심 대책 9개 중 8개는 5년 전 발표한 3차 기본계획의 재탕이었다. 중증 외상 환자가 119 신고부터 응급실 도착까지 걸린 시간의 중위 값이 2015년 25분에서 2020년엔 32분으로 늘어났다. 구급차를 타고 1시간 넘게 거리를 헤매는 ‘응급실 뺑뺑이’를 3분마다 1명꼴로 겪는다. 환자 10명 중 1명은 적절한 치료를 못 받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5년 내에 응급수술 대란이 닥친다는 현장의 경고를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응급실 표류#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응급실 뺑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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