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스턴의 찰스타운 지역에는 오벨리스크를 본뜬 67m 높이의 길쭉한 탑이 서 있다. 미국 독립전쟁 최초의 전투였던 벙커힐 전투를 기념하는 탑이다. 1775년 6월 17일 이곳에서 영국 정규군 3000여 명과 당시엔 ‘대륙군’이라 불렀지만 민병대나 다름없었던 미군 2400명이 전투를 벌였다.
지금은 매립 공사로 주변이 많이 변했지만 이때 벙커힐은 육지와 가느다란 병목 형태의 지형으로 연결된 섬 같은 곳이었다. 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곳에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만에는 영국 함대가 있었다. 벙커힐을 미군이 점령하면 영국 입장에서는 보스턴 항구와 함대가 위험했다.
미군은 기습적으로 찰스타운을 내려다보는 벙커힐과 브리즈힐이란 곳을 점거하고 공병대장의 지휘 아래 밤새워 보루를 수축(修築)했다. 뒤늦게 영국군이 이를 발견하고 연대를 상륙시켜 공격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벌어진 전투에서 미군은 용감하게 버텼지만 탄약이 떨어지면서 보루는 함락되고 부대는 철수했다. 영국군은 승리했지만 결과는 승리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처참했다. 사상자 수는 미군이 450명, 영국군은 무려 1054명이었다.
영국군이 언덕 위 보루를 향해 3열 횡대로 무모한 공격을 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영국 지휘관은 상대가 민병대라 얕보았고, 정규군의 자존심으로 정정당당하게(?) 본때를 보여주는 승리를 거두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레드 코트’라고 불렸던 눈에 띄는 붉은색 군복을 입고 무릎을 직각이 될 때까지 들었다가 내리며 걷는 프로이센식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영국군 횡대는 좋은 사격 표적이었을 뿐이다. 이날 전투는 ‘대륙인’들에게 전술만 잘 세우고 지형지물만 잘 이용하면 민병대도 정규군을 혼내줄 수 있다는 교훈만 던져주었다. 현장에서 멀리 있는 본토의 정치가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똑같은 실수를 미군은 남북전쟁에서 반복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반복하고 있다. 21세기의 장군 중에도 역사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실전적 경험이나 가치가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전쟁만이 아니라 전 분야가 그렇지만 그래서 실수는 무한히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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