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이후 7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자 남는 쌀 강제매수법”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입법권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정국 경색이 불가피해졌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예상치의 3∼5%를 넘거나, 쌀값이 평년 대비 5∼8% 이상 하락하면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했다. 민주당은 이 법안이 쌀값 하락을 막아 농민들의 소득 보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매년 1조 원 이상의 혈세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투입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농업 경쟁력을 망칠 것이란 비판이 많았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민생 1호 법안’으로 지정됐던 양곡법은 결국 윤 대통령의 ‘거부권 1호 법안’으로 귀결됐다. 발의 이후 여야 간에 농업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논의나 토론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무조건 처리네, 거부권 행사네 하는 힘겨루기만 이어졌다. 정작 당사자인 농민들은 논의 과정에 끼지도 못했다.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의 중재 노력이 있었지만 무위에 그쳤다.
민주당의 양곡법 강행 처리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치 실종’ ‘협치 부재’의 상징적 사례라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있다. 거야(巨野)는 압도적인 과반 의석(169석)을 바탕으로 사사건건 입법 힘자랑에 나선다. 국정을 책임지는 정부·여당은 야당의 이해나 협조를 구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 마치 입법 권력과 행정 권력 중 누가 더 센지 끝장을 보겠다는 듯한 태도다.
우려스러운 건 앞으로도 줄줄이 여야 대치가 예고돼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안을 비롯해 노란봉투법, 간호사법 등을 본회의에 직회부(直回附)해 강행 처리할 태세고, 이에 대통령은 거부권으로 맞설 공산이 크다. 시급한 민생 현안은 뒷전으로 밀린 채 무한 대치 국면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양곡법은 정치적 기세 싸움 차원이 아니라 농업 경쟁력 측면에서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거야의 입법 독주,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악순환은 양곡법 하나로 끝내야 한다. 여야 간 큰 이견이 없고 당장 처리가 시급한 민생 법안부터 하나하나 처리해 나가는 정치의 복원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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