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형 원전의 체코 수출에 제동을 걸었다. 한국형 원전이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에 의존한 부분이 있는 만큼 다른 나라에 원전을 팔려면 이 회사와 합의하라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이 문제가 매끄럽게 풀리지 않을 경우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이라는 정부의 목표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미 에너지부는 원전을 체코에 수출하겠다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신고를 최근 반려했다. 한수원에 보낸 답신에서 에너지부는 “미국인(법인 포함)이 신고를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 미국의 원전 기술을 이전한 기업이 웨스팅하우스여서, 한수원 대신 이 회사가 신고 주체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 연방 규정은 수출 통제를 받는 원전 기술로 해외사업을 벌일 때 정부에 신고하도록 정해 놓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한국형 원전이 독자개발 기술이냐, 웨스팅하우스 기술에 의존한 것이냐를 놓고 분쟁이 있어서다. 한수원은 1970년대 원전을 건설할 때는 기술 도움을 받았지만 3세대 원자로인 한국형 원전(APR1400)은 국내 기술로 개발됐다는 입장이다. APR1400은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됐고, 체코·튀르키예 수출을 추진 중인 모델이다. 반면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이 자사 원자로 디자인을 차용했다고 주장하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미 에너지부의 결정은 웨스팅하우스 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분쟁이 심화할 경우 양국은 모두 피해를 본다. 현재 원전 수출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한국, 러시아, 중국 정도다. 웨스팅하우스는 설계 분야의 원천기술을 보유했지만 근래에 원전을 지은 적이 없어 시공·운영 능력이 부족하다. 세계 각국이 원전 건설을 서두르는 와중에 한미가 갈등을 빚으면 러시아, 중국만 어부지리를 얻게 된다.
이 갈등은 결국 양국 최고위급의 경제 외교로 풀 수밖에 없다. 이달 말 미국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 테이블에 윤석열 대통령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과 함께 원전 협력 안건을 올려야 하는 이유다. 시동이 걸린 원전 수출의 최대 걸림돌을 치우는 것은 물론이고, 국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양국 관계를 원전 협력의 좋은 파트너로 끌어올릴 해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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