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0년간 300조 원을 투자하기로 한 경기 용인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해 정부는 지난달 전국 15곳을 국가첨단산업단지 후보로 정했다. 여기에 더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3개 분야 첨단특화단지를 상반기 중 선정할 계획이다. 이번 기회에 쇠퇴한 지역의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이 제정되고, 이 법에 따라 구로공단이 1967년 설립된 후 한국의 산단은 ‘수출 한국’을 든든히 받쳐 온 기반이었다. 지금도 1274개 산단의 12만 개 기업에서 근로자 230만 명이 일하고 있다. 작년 한국 수출의 65%도 산단에서 나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출 위축과 극심한 인력난으로 지방 산단이 빈사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작년 1월 제정된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이 노후한 산단을 업그레이드할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법이 적용되는 첨단특화단지 입주기업이 전력·용수·입지와 관련해 인허가를 요청하면 지자체는 60일 안에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인허가가 난 것으로 간주돼 사업 속도가 빨라진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설립을 5년 지연시킨 송전선 문제,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공장 착공을 1년 넘게 늦춘 용수 문제의 재발을 막을 수 있게 됐다.
미중의 경제패권 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세계 각국은 첨단산업 제조업 기반을 국내에 확충하기 위해 속도전을 벌이는 중이다. 대만은 TSMC 등이 입주한 ‘신주 반도체 과학단지’를 필두로 국토의 주요 거점을 모두 산단으로 바꾸고 있다. 일본은 한국, 대만에 뺏긴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5년 걸릴 구마모토현 반도체 산단을 2년 만에 짓겠다고 한다. 유럽산 반도체의 3분의 1을 생산하는 독일 실리콘 작소니 산단에는 2500개 기업이 몰려 반도체 생태계를 일구고 있다.
첨단산단 구축은 이제 각국의 미래가 걸린 국가 대항전이 됐다. 어느 나라가 더 빨리 산단을 완성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느냐,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얼마나 많은 규제를 풀고 지원을 쏟아부을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산단에서 일할 젊은 핵심 인재를 충분히 공급하는 능력도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불모지에서 출발해 메모리반도체, 디스플레이 세계 1위에 올라섰던 제조업 코리아. ‘전례 없는 속도’만이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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