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채널에 활용할 영상 촬영차 동유럽의 무역 중심지인 루마니아에 갔다. 루마니아는 요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이미 국제 뉴스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국가이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데다가 흑해에 항구를 둔 루마니아는 이번 전쟁에서 곡식 수출을 계기로 위상을 높였다.
사실 루마니아는 한국보다 북한과 더 가까운 나라였다. ‘였다’라는 과거형을 쓴 이유는 현재 양국이 교류하고 있진 않지만 예전에는 그랬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루마니아는 1989년에 민주화가 되면서 공산주의를 버렸다. 민주화가 되기 전 루마니아에서 오랫동안 정권을 잡은 사람이 악명 높은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다.
차우셰스쿠는 1971년에 아시아 순방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다른 유럽 공산주의 지도자들처럼 ‘정상적인’ 정치인이었다가 북한에 있는 공산주의 분위기를 보고 바뀌었다고 한다. 주체사상에 감명을 받은 그는 루마니아에 오자마자 주체사상을 번역시켰다. 귀국 후 첫 국회 연설에서는 주체사상을 섞어서 새로운 로드맵을 발표했다. 1971년 이후부터 루마니아는 폴란드나 헝가리 같은 다른 유럽 공산주의 국가와 다르게 1인 독재 체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런 과거를 뒤로하고 필자는 대한민국이 루마니아와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루마니아는 더 이상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다. 오히려 나토 회원국이 되면서 동유럽의 대표적 친미 국가가 됐다. 그러나 이것보다 한국과 유사한 점이 있다. 루마니아도 대한민국처럼 ‘민족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각 나라 국기들을 보면 루마니아 국기와 상당히 비슷한 국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루마니아에 붙어 있는 몰도바의 국기이다. 양국의 국기는 왜 비슷할까? 이유는 양국이 같은 민족이고, 공산주의 때문에 분단됐기 때문이다.
분단의 흐름을 빠르게 요약하자면,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루마니아 민족은 모두 같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전쟁을 일으키고, 러시아 제국이 몰도바를 차지하면서 루마니아 민족의 첫 분단이 일어나게 되었다. 1881년에 루마니아 민족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몰도바는 러시아 제국 치하를 벗어나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러시아 제국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혼란에 빠지자 루마니아는 남은 민족의 땅인 몰도바를 러시아로부터 가지고 오면서 민족 통일을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과 손을 잡는 바람에 다시 소련에 몰도바를 빼앗기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루마니아는 다시 분단됐다.
소련이 1991년에 분단되면서 몰도바도 단독 공화국으로 독립을 했지만, 통일 논의도 있었다. 몰도바가 독립한 직후엔 굳이 루마니아와 통일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루마니아의 입장에서도 소수민족이 많아진 몰도바와 꼭 통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필요성이 의문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양국의 경제 수준이 비슷비슷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루마니아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 나토 회원국도 되고, 경제 성장을 해서 몰도바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현재 몰도바 국민의 3분의 1이 루마니아 국적을 가지고 있다. 일반 외국인이 루마니아 국적을 취득하려면 엄청 어려운 귀화 면접을 통과해야 하는 반면에 몰도바 사람들은 귀화 절차가 쉽다. 그런데도 경제 격차가 커지면서 아직 양국이 통일을 못 하고 있다.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통일 이슈는 다른 나라들에는 흥미로운 국제정치 토론 거리겠지만, 대한민국으로선 관심을 갖고 가까이 지켜봐야 할 주제라고 본다. 한국에서 이런 말을 흔히들 한다. “강대국들의 간섭과 북한의 1인 독재 체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벌써 통일을 했을 거야.” 하지만 필자는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역사를 보면서 반대로 ‘과연 미국과 중국의 간섭과 북한의 독재 체제가 없었더라도 대한민국이 쉽게 북한과 통일했을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이렇듯 북한과 통일 관련 좋은 질문 거리를 들고 토론하려면 루마니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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