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적용된 첫 판결이 나왔다. 요양병원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 사고에서 중대재해 예방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청 업체 대표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1월 27일 법이 시행된 지 435일 만에 나온 판결이다.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웠던 ‘1호 판결’이 나오기까지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 내용에 만족하는 이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영계는 현장 책임자보다 원청업체 대표를 더 무겁게 처벌했다는 점에 반발했고, 노동계는 사망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집행유예에 그친 점에 반발했다.
첫 판결이 나왔지만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처벌 대상이 되는 ‘기업 대표’나 ‘그에 준하는 자’가 누구인지조차 불명확하다. 여러 기업들이 중대재해법 시행 전후 안전보건 조직을 강화하며 CSO(최고안전보건책임자)를 잇달아 선임했지만 검찰이 현재까지 기소한 대상은 모두 기업의 대표이사다. 기업 대표가 현장 안전을 직접 챙기면 안전보건에 관한 최종 결정권을 가진 자로 간주돼 기소 대상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안전보건 관계 법령상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 조치’는 무엇인지, 현장 근로자의 부주의나 안전수칙 위반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등 많은 부분이 아직 불확실한 채 남아 있다.
이렇다 보니 조사와 수사는 길어진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법이 시행된 뒤 중대재해법을 위반해 입건된 사건은 지난해 200건이 넘는다. 그런데 그중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11건에 그친다. 기소에 걸린 기간도 평균 8개월에 이른다. 경영 책임자가 누구인지부터 조사해 그가 안전보건의무를 고의로 위반했는지, 그리고 그 의무 위반이 사고의 원인이 됐는지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해야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일부는 중대재해법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각심을 일으켜 사고 예방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해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의 지난해 사망자는 256명으로 2021년 248명보다 8명 많았다. 법 적용 대상이 아닌 50인 미만 사업장 사망자는 388명으로 지난해(435명)보다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사망 사고가 나면 대표가 징역 1년 이상의 형을 받게 되는데도 사망 사고는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특히 현장 근로자 수가 많은 건설업계는 ‘피로 누적’을 토로한다. 수백 곳의 현장마다 안전보건 조치를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일일이 사진과 서류로 기록을 남겨 두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사고가 나면 수개월씩 걸리는 노동청 조사와 경찰 수사를 받느라 현장에는 오히려 더 신경 쓰지 못한다는 호소도 여전하다.
정부는 중대재해법의 처벌요건을 명확히 하고 제재 방식을 개선하는 방안을 6월까지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중대재해법은 내년이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으로까지 적용 대상이 확대된다. 처벌이 아니라 예방을 위한 법이 되도록 중대재해법 재검토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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