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활약하는 국내 스타트업의 절반가량이 한국이 아닌 현지에서 창업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KOTRA가 지난해 29개국에 진출한 국내 스타트업 259곳을 분석한 결과다. 한국의 모(母)기업 없이 해외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 비중은 해마다 빠르게 늘고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신기술을 가진 신생기업들이 한국에서 창업의 꿈을 펼치지 않고 해외로 떠나는 것이다.
한국에서 창업한 스타트업들이 해외로 떠나고 싶어 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무역협회의 지난해 설문조사에서 스타트업 4곳 중 1곳이 해외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스타트업의 혁신과 성장을 가로막는 국내 규제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도심 자율주행을 시연한 스타트업 ‘토르드라이브’가 규제에 발목 잡혀 미국행을 택한 게 2017년인데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역대 정부마다 규제 혁파를 외쳐댔지만 스타트업의 싹을 짓밟는 척박한 환경은 그대로다. 뛰어난 의료진과 정보기술(IT) 기반을 갖추고도 원격의료는 여전히 불법이고 공유숙박·승차 등 해외에선 활발하지만 국내에서 제한받는 신사업이 한둘이 아니다. 플랫폼 기반 스타트업들은 의료·세무·부동산 등 이익집단의 반발에 막혀 고전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규제로 분류되는 의원 입법안만 하루 평균 2.7건꼴로 발의됐다고 한다.
이러니 세계 100대 유니콘 절반이 한국에선 온전하게 사업을 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 청년창업지원 공익재단인 아산나눔재단의 분석 결과, 해외 유니콘 12곳은 온갖 규제와 절차에 묶여 한국에서 사업이 아예 불가능했고 43곳은 제한적으로 할 수 있었다. 똑같은 기술력을 갖고도 까다로운 허가 기준과 절차 탓에 기술 실증과 상용화에만 하세월이 걸리는 게 우리 실정이다. 동아일보 취재팀과 인터뷰한 스타트업 대표 4명도 “다시 창업한다고 해도 한국이 아닌 해외를 택하겠다”고 했다.
스타트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잠재 후보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위기의 시대에 혁신 기술을 앞세운 스타트업 창업이야말로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낼 발판이 될 수 있다. 겹겹이 쌓인 스타트업 진입 장벽과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제도들을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 규제 혁신이 지체될수록 혁신 기술과 창의적 기업가정신은 한국에서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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