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대통령실을 감청한 정황과 관련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야당이 “(감청 보도가) 사실이라면 주권 침해이자 외교 반칙”이라며 공세에 나선 가운데 대통령실은 내부 경위 조사에 들어갔다. 미국으로는 어제 외교부 당국자들이 출국했다. 대통령실은 “양국의 상황 파악이 끝나면 필요한 경우에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감청 파문은 동맹인 한미 양국의 신뢰를 흔드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의 정보보안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대통령실은 용산으로의 ‘졸속 이전’ 이후 보안이 뚫렸다는 야당 비판에 대해 “청와대보다 용산이 더 탄탄하다”고 반박한다. 대통령실의 보안시스템은 지난해 이전 검토 시점부터 군 출신의 여야 의원 모두가 제기했던 문제였다. 국방부 건물로 사용될 당시 사용한 도·감청 방지 장치가 있다지만 핵심 기밀정보 보호에는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구나 신호정보(시긴트·SIGINT)를 잡아내고 암호를 해독하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통신감청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정보전에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게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이다.
대통령실이 다루는 국가 전략에는 최고 수준의 보안이 요구된다. 동맹국과도 이해관계가 다르거나 입장이 엇갈릴 경우 관련 정보의 민감도는 더 높아진다. 미국과는 북한 핵·미사일 대응을 비롯한 대북정책 외에 경제안보 측면에서도 현안이 많아지는 시점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으로 불거진 갈등을 놓고는 아직도 협상이 진행 중이다.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현안에도 접근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관련 정보와 논의 내용의 유출은 국익을 훼손하는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도·감청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당장 우리 내부의 논의부터 지장을 받게 된다. 대통령실은 내부 보안 인프라를 전면 재점검하고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사실 관계를 철저히 확인하고 상응 조치를 미국으로부터 받아내는 것과 함께 우리 내부의 빈틈을 단단히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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