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의 사업은 크게 ‘상선’과 ‘해양 및 특수선’으로 나뉜다. 지난해 기준 매출 비중은 상선 부문이 83.9%, 해양 및 특수선 부문은 14.5%다. 해양 및 특수선에는 잠수함과 수상함 등 ‘방산 분야’가 포함돼 있다.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작년 초 HD현대와 대우조선 간 합병을 불허했을 때는 상선을 문제 삼았다.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EU는 한국 조선사가 덩치를 키우는 걸 탐탁지 않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치열하게 가격 경쟁을 하던 HD현대,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3곳 중 둘만 남게 되면 유럽 선사들이 아무래도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할 거란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는 그들에게 완전히 다른 딜이다. 상선 부문에서 한국의 ‘빅3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EU 경쟁당국은 당초 예정(이달 18일)보다 한참 앞선 지난달 말 ‘승인 도장’을 찍어줬다. 철저히 계산기를 두드려 본 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국 기업들을 위해 내린 결정이다.
정작 문제는 안방에서 불거졌다. 모든 나라에서 승인된 한화-대우조선 합병을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방산 부문 수직결합이 공정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한화나 대우조선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다.
대우조선은 이미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만 1조6136억 원의 적자를 냈다. 2021년의 1조7547억 원 영업손실까지 합하면 2년간 영업활동으로 까먹은 돈만 3조3683억 원이다. 부채 비율은 2021년 말 380%에서 작년 말 1540%로 뛰었다. 정상적인 회사라고는 보기 힘들 만큼 처참한 수치다.
인수합병(M&A)은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중요한 경영활동이다. 한화가 이런 부실기업을 사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투자한 만큼의 사업적 시너지가 예상되니 2조 원을 선뜻 내기로 한 것이다. 내수에만 머물던 방산을 글로벌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때마침 한국 방산기업들의 해외 수출 계약이 잇따르던 터였다.
일부에서는 공정위가 승인을 내주되 여러 조건을 붙일 거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같은 정부 기관인 KDB산업은행마저도 고개를 젓고 있다. 산업은행은 측은 “산업통상자원부가 한화와 대우조선의 방산업체 매매 승인을 이미 완료했다”면서 “방산시장의 구조적 특성상 공정위가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함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의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폄하할 만한 논리는 아니다.
작년 1분기(1∼3월) 42억 달러어치를 수주했던 대우조선은 올해 같은 기간 8억 달러 수주에 그쳤다. 그나마 훈풍이 불고 있다는 조선업에서 대우조선은 차디찬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회생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거란 지적도 심심찮게 나온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비록 전부는 아니더라도 22년 만에 찾아온 공적자금 회수의 기회다. 공정위가 걱정하는 바가 있다면, 승인 후 불공정 행위를 더 철저히 감시하면 될 일이다.
댓글 0